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조선 숙종(肅宗) 6년(1680)에 쓰여진 『광덕사 사적기(廣德寺事蹟記)』에 따르면 통일신라시대 832년(흥덕왕(興德王) 7) 승려 진산(珍山)이 자장(慈藏)이 당나라로부터 가져온 물품 중 불치(佛齒) 1과, 사리 10과, 가사 한 벌, 불자(拂子) 1개, 금과 은으로 쓴 『화엄경』, 『법화경(法華經)』, 『은중경(恩重經)』 각 2부씩을 가지고 개창하였다고 한다. 창건 시기와 관련해서 대웅전 해체 시 발견된 통일신라 양식의 대형 주춧돌이 참고 된다.
『태종실록』에는 1414년(태종 14)에 왕명으로 『대반야경(大般若經)』을 일본의 승려 규주(奎籌)에게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경종실록』에는 1723년(경종(景宗) 3)에 광덕사에 불이 났다는 기록 등이 전한다. 이 밖에도 조선시대 광덕사에 대한 기록에서는 세조(世祖)가 온양에 온천을 왔을 때 이 절에 방문하여 친히 승려들의 부역(賦役)을 감해주고 위토전(位土田)을 내린다는 교지(敎旨)를 하사하였다고 쓰여 있는데, 현재 이 교지는 보물로 지정되어 광덕사에 전해진다.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충청도와 경기도 지방에서 가장 큰 절 중의 하나로서, 사찰 소유 토지가 광덕면 전체에 이르렀고, 89개에 달하는 부속 암자(庵子)가 있었다. 또한, 누각(樓閣)이 8개, 종각(鐘閣)이 9개, 만장각(萬藏閣)이 80칸, 천불전(千佛殿)도 3층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으로 타버린 뒤 1598년(선조(宣祖) 31)에 희묵(熙默)이 중수하였고, 1665년(현종(顯宗) 6)에 석심(釋心)이 불상과 종을 개수하였으며, 1679년(숙종 6)에 상민(尙敏)이 중창하였다. 1981년에 대웅전과 종각 등을 신축하고 천불전도 증축하였으며, 그 앞으로 석교도 가설하였다. 1996년 철웅(哲雄)이 15년 동안의 불사를 마무리하여 대웅전 · 천불전 · 명부전 · 범종각 · 적선당 · 보화루 등을 중창하였다. 이 가운데 천불전은 1998년에 소실되었지만, 2006년에 다시 복원하였다.
1984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천불전 안에는 천불이 그려진 불화(佛畫) 3점이 있어, 전체 3,000불의 그림이 장엄한 기운을 풍기고 있다. 이 불화는 가로 28자, 세로 35자의 거대한 규모이다.
고려 말기의 사경(寫經)으로 추측되는 『법화경』은 비록 낙질본(落帙本)이기는 하지만 여러 권이 남아 있는데, 그 중 6책이 1963년 보물로 지정되어 현재 불교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된 마곡사의 감지은니 『묘법연화경』 권1 및 감지금니 『묘법연화경』 권6도 원래는 이 절에 소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조선 사경으로는 백지에 먹으로 쓴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과 『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長壽滅罪護諸瞳子陀羅尼經)』이 합철되어 남아 있다. 이것은 조선 태종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孝寧大君)이 부인, 아들과 함께 시주하여 조성하였는데, 현재 남아 있는 세조의 교지와 함께 이 절이 조선 전기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1749년(영조(英祖) 25)에 조성된 광덕사 노사나불 괘불탱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절에서 동북쪽으로 조금 올라간 곳에는 진산의 승탑 등 1978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승탑 4기가 있으며, 천불전 우측에는 1985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광덕사 삼층석탑이 있다. 또한, 이 절 일대에는 호두나무가 많기로 유명한데, 대웅전 앞에 있는 천안 광덕사 호두나무는 700여 년 전 고려의 유청신(柳淸臣)이 중국에서 처음 들여와 심은 것이라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