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건릉은 부친 사도세자(思悼世子, 17351762) 현륭원(顯隆園)의 동쪽으로 정조(正祖, 17521800, 재위 17761800)가 미리 정해 놓은 자리였다. 1800년 정조가 승하한 뒤 이곳에 건릉이 조성되었으며, 1821년 3월 22일 김조순(金祖淳, 17651832)이 상소로 천봉(薦奉)이 결정되었다.
1821년 3월 9일 효의왕후(孝懿王后) 청풍김씨(淸風金氏, 1753~1821)가 승하하자 능호(陵號)를 정릉(靜陵)으로 정했지만, 3월 22일 정조 건릉의 천릉과 효의왕후의 합장이 결정되자 건릉의 능호를 따르게 되었다.
건릉 천릉 시 건릉의 석물을 대체로 옮겨 사용하였으며, 난간의 죽석(竹石), 좌향석(坐向石) 등 일부만 새로 제작하였다. 건릉에 사용된 석재는 현륭원과 마찬가지로 수원 앵봉(鶯峯)의 석재를 사용하였다.
건릉의 상설은 봉분 주변에 12면의 난간석, 난간석 뒤편에 양석(羊石), 호석(虎石) 각 2쌍과 곡장(曲墻)이 있다. 봉분 남쪽에 석상(石床, 혼유석)이 고석(鼓石) 위에 올려져 있으며, 좌우에 망주석(望柱石) 1쌍, 혼유석 남쪽에 8각의 장명등(長明燈)이 있다. 장명등 남쪽에 문석인(文石人) 1쌍, 무석인(武石人) 1쌍과 마석(馬石) 2쌍이 있다.
정조는 생전에 병풍석(屛風石)을 사용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이를 따랐다. 현륭원에서 양석, 마석, 호석은 1쌍씩만 제작하였으나, 능침에서는 모두 2쌍을 사용한다는 『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의 내용에 따라 조성하였다.
능강(陵岡) 아래에는 정자각(丁字閣)과 홍살문(紅箭門)이 남북으로 자리하고 그 사이에 향로(香路: 제향 시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길)와 어로(御路)가 설치되어 있다. 정자각 주변에는 예감(瘞坎)과 비각(碑閣), 수라간(水刺間), 수복방(守僕房) 등이 건립되었으며, 홍살문 곁에 판위(版位)가 있다.
건릉의 표석은 1800년 처음 건립하였으며, 1821년 합봉(合封) 표석을 개수(改修)하였다. 1899년 정종(正宗)의 묘호를 정조(正祖), 효의왕후를 효의황후(孝懿皇后)로 높이면서 현재의 표석으로 건립하였다.
1800년 조성된 건릉의 구릉지는 2011~2012년까지 발굴되어 곡장, 현궁, 퇴광 등의 위치가 확인되었으며, 각종 명기(明器)가 발견되어 조선 후기 왕릉 조성과 왕실 공예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장조(莊祖, 사도세자)와 헌경왕후(獻敬王后, 혜경궁 홍씨)의 융릉(隆陵)과 함께 사적 ‘ 화성 융릉과 건릉(華城 隆陵과 健陵)’으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