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5칸, 측면 5칸의 팔작지붕건물. 201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326년(충숙왕 13) 강원도 존무사(存撫使) 박숙정(朴淑貞)에 의하여 신라 사선(四仙)이 놀던 방해정 뒷산 인월사(印月寺) 터에 창건되었으며, 그뒤 1508년(중종 3) 강릉부사 한급(韓汲)이 지금의 자리에 옮겨지었다고 전해진다.
1626년(인조 4) 강릉부사 이명준(李命俊)에 의하여 크게 중수되었는데, 인조 때 우의정이었던 장유(張維)가 지은 중수기(重修記)에는 태조와 세조도 친히 이 경포대에 올라 사면의 경치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임진왜란으로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었다고 쓰여져 있다.
현재의 경포대 건물은 1745년(영조 21) 부사 조하망(曺夏望)이 세운 것으로서, 낡은 건물은 헐어내고 홍수로 인하여 사천면 진리 앞바다에 떠내려온 아름드리 나무로 새로이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1873년(고종 10) 강릉부사 이직현(李稷鉉)이 중건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현판은 헌종 때 한성부 판윤을 지낸 이익회(李翊會)가 쓴 것이다. 이 밖에도 유한지(兪漢芝)가 쓴 전자체(篆字體)의 현판과 ‘第一江山(제일강산)’이라 쓴 현판이 걸려 있는데, ‘第一江山’이라는 편액은 ‘第一’과 ‘江山’의 필체가 다른 점이 특이하다.
또한, 숙종의 친서와 이이(李珥)가 지은 시가 있다. 옛사람이 “해 뜨는 이른 아침이나 달 밝은 가을밤에 경포대에 올라 경포호를 굽어보거나 호수 너머 동해의 푸른 바다를 대하면 속세는 간 데 없이 온통 선경이요.”라고 표현한 것처럼, 누각 주위에는 소나무와 상수리나무 등이 알맞게 우거져 운치 있는 경관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