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고서(古西) 네거리를 지나 창평 쪽으로 가다보면 길 오른쪽에 ‘鳴玉軒庭苑入口’라고 쓰인 비석이 서 있고, 그 옆의 샛길로 접어들어 언덕을 하나 넘으면 네모진 연못이 하나 있는데 이것이 바로 명옥헌정원의 중심을 이루는 연못이다.
못의 크기는 남북 40m 안팎, 동서가 20m 가량되는 방지(方池)로서, 한가운데에 둥근 섬 하나를 쌓았고 주위에는 배롱나무를 심었다.
명옥헌은 못 남쪽에 위치한 언덕 아래 못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도록 북향으로 서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서, 한가운데에 한칸 넓이의 방을 꾸며 놓았다.
건물 동편에는 작은 내가 흐르고 있으며 이 물을 끌어들여 건물 위에 또 하나의 방지를 꾸며 놓았다. 못 가운데에는 자연석으로 된 섬이 있고, 못 밑에는 ㄱ자형으로 열을 지어 배롱나무를 심어 놓았다.
이 정원은 오희도(吳希道)가 외가가 있는 이곳으로 옮겨와 살게 되면서 비롯된 것으로, 그는 광해군 치하의 어지러운 세상에서 피하여 조용히 지내기 위하여 집 옆에 ‘망재(忘齋)’라는 조그마한 서재를 짓고 틈틈이 장계골에서 자연을 즐겼다고 한다.
그가 별세한 뒤 그의 아들 오이정(吳以井)이 아버지가 평소 자연을 즐기던 호봉산(瓠峯山) 기슭의 계류가에 터를 잡아 명옥헌을 짓고, 아래위에 못을 파 꽃나무를 심어 가꾼 것이 오늘날 전하는 명옥헌정원의 시작이라고 한다.
정철(鄭澈)의 넷째아들 정홍명(鄭弘溟)이 지은 〈명옥헌기 鳴玉軒記〉가 전하고 있으며, 계류가 바위에는 송시열(宋時烈)이 썼다고 하는 ‘鳴玉軒癸丑(명옥헌계축)’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명옥헌 뒤 언덕에는 1825년(순조 25)에 창건되고 1868년(고종 5)에 철폐된 도장사(道藏祠)터가 있는데, 현재 명옥헌에는 명옥헌이라 새겨진 현판은 없어졌고 다만 ‘道藏祠’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