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7월 13∼23일에 걸쳐 전남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되었다. 이 곳에서는 2개의 집터가 조사되었는데, 하나는 지름 4.3m의 원형에 가까운 제1호집터이고 다른 하나는 모가 죽은 네모난 제2호집터인데, 제2호는 제1호와 같은 지역이지만 행정구역상으로는 광산군 대촌면 원산리에 해당한다.
제2호집터의 경우 파괴가 매우 심하여 일부만 확인할 수 있었으나, 1호집터는 벽선과 기둥구멍이 뚜렷이 있고 중앙의 기둥구멍 사이에서 갈돌[碾石]이 출토되었으며, 집터 바닥 전면에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석재를 비롯하여 민무늬토기조각들이 수습되었다.
또한 이 집터에는 북벽 가까이에 감실(龕室)이 있으며, 가운데 기둥구멍 두 개를 중심으로 북쪽에 두 개, 남쪽에 두개의 보조기둥구멍이 거의 대칭이 되도록 설치되어 있었다. 또한 남쪽에 최대너비 80㎝, 최소너비 33㎝ 정도의 사다리꼴을 한 입구가 달려 있었다.
유물은 바닥 전면에 분포되어 있으나, 가운데 중심이 되는 기둥구멍을 기점으로 하여 북서쪽에 화덕자리와 돌부스러기 등이 몰려 있는 것으로 보아 부엌의 위치에 해당하는 것 같으며, 반면 동남쪽은 숫돌을 포함하여 점판암제의 미완성 석기재료가 출토되는 점으로 보아 석기를 제작하였던 곳으로 생각된다.
토기는 전형적인 민무늬토기인데 말기적인 형태의 것은 전혀 없다. 송암동 1호집터와 유사한 집터로는 부여 송국리유적을 들 수 있다. 그 연대는 서기 전 6∼4세기 초로 보고 있는데, 송암동집터도 서기 전 5∼4세기 경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