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은 마을 안과 산 경사면 일대, 그리고 그 중간 평지에 무리를 이루고 있다. 아직 학술적인 발굴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된 고인돌은 모두 30여 개이다. 모두 야산의 얕은 구릉지대를 이용해 축조하였고, 지형과 지역에 따라 외관상 몇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진다.
형식은 모두 남방식(바둑판식) 고인돌에 속하며, 대체로 거대한 덮개돌[上石]을 4~5개의 괴석(塊石)으로 받친 바둑판 모양을 하고 있다. 규모는 개석의 장변이 480㎝인 것에서부터 100㎝인 것까지 균일하지 않다. 덮개돌을 떠받친 받침돌[支石]은 길이 20∼30㎝ 내외의 괴석을 이용하였다.
이 곳의 고인돌은 지역에 따라서 크게 A지구에서 G지구로 나누어진다. A지구의 경우 장축을 모두 남북으로 두고 있지만, B지구의 경우는 장축을 동서로 두어 바다를 향하고 있으며, 나머지 지구는 산 경사면에 따라서 불규칙적인 장축의 방향을 보이고 있다.
A지구의 각 고인돌 사이의 간격은 5~6m 정도이며 제2·4·5호의 한 군과 제6∼9호의 한 군은 더욱 협소한 상태로 인접하여 일렬(一列)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남해의 진도(珍島)·완도(莞島) 등의 남해 도서와 장흥군 일대의 해안가에서 흔히 나타나며 대구 대봉동의 경우도 또한 그러하다.
기좌도 고인돌의 연대는 반출 유물이 없어 확실하게 알 수 없으나 대략 서기전 천년기의 후반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