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철정(鐵鋌)’이라고도 한다. 주로 삼국시대 고분 바닥에서 보인다. 그 용도에 대해서는 철소재설 외에 화폐설 등이 있다. 그러나 이 시기 신라·가야지역 고분에서 출토되는 다량의 철정으로 보아 철소재의 보급이 보편적인 형태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5세기 중엽 이후가 되면 철정의 크기와 무게가 일정한 범위 내에서 규격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철정의 양적 증가와 규격화 현상은 대량생산을 전제로 했던 것 같다.
최근 중요한 발굴조사에 의하면, 철정의 출토지는 경주 및 낙동강유역의 부산·김해·대구·창원지역과 영산강유역으로, 이 두 곳이 2대 분포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철정은 판상 철제품에서 발달되었고 그 발생지역은 낙동강유역이었다고 추정된다. 그 발전과정은 부산 동래 복천동고분군이나 김해 대성동고분군에서 형식학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백제시대 유적일 가능성이 있는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산리 토광묘는 연대가 4세기대까지 올라가지만, 최근의 경주 사라리 유적은 연대가 1세기 전후까지로 올라갈 가능성이 많다. 경주 출토의 대형 철정은 두께가 0.3∼0.7cm의 두꺼운 것으로서 낙동강 하류의 김해·부산 일원의 철정과는 다르다.
철정은 일정의 규격품으로 지역차나 형태차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복천동 철정과 같은 소형 철정은 낙동강 하류의 특색이다.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예둔리(禮屯里) 출토의 철정은 형태적으로 볼 때, 동래·김해지역에서 공급된 것이며 동래 복천동이나 김해 퇴래리 유적 출토의 철정과 유사하다.
철정은 신라(경산·대구·창원 등 강동지역 포함), 가야(동래·김해·창원·고성·함안·의령), 마한(영산강유역)뿐만 아니라 왜(倭)에도 보급되었던 유용한 철소재였다. 왜로의 철정공급은 5세기 후반 이후에 없어졌다고 생각된다. 이로 인해 철을 둘러싼 왜와의 관계도 변했을 것이다.
일본지역에서의 철정의 출현과 소멸은 한반도와 같은 시기이다. 철정이 교환가치를 가지고 양 지역에서 유통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일본열도의 철정은 형태나 두께에서 볼 때, 신라지역보다는 낙동강이나 영산강의 가야·마한지역에서 공급된 것으로 추정된다. 김해가야(金海伽倻)·안라가야(安羅伽倻)·마한·왜 등 이들 여러 지역은 수요·공급관계에서 하나의 경제권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