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구릉 경사면에 있으며, 현재 22기가 남아 있다. 이 고인돌들은 모두 덮개돌을 3개 내지 5개의 고임돌들이 받치고 있는 남방식(바둑판식) 고인돌들이다.
그 가운데 1기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고이즈미[小泉顯夫]·사와[澤俊一]에 의하여 조사되었는데 3.6m 정도의 덮개돌 밑에 3개의 고임돌이 있고, 길이 약 2m, 너비 약 1.7m의 상자형 무덤방이 있었다고 한다.
바닥에 판석을 깔고 그 위에 판자모양의 납작한 돌로 무덤방을 만든 다음, 다시 판석으로 덮었으며 무덤방 주위에 고임돌을 받치고, 뚜껑돌을 얹은 남방식(바둑판식) 고인돌이다. 그러나 무덤방의 크기가 다른 고인돌보다 훨씬 큰 것이 주목된다. 이 고인돌에서는 돌도끼 1점, 돌검·토기조각들이 출토되었다고 전한다.
『한국사전유물지명표』와 『전국유적목록』에 남평군 옥하리(玉下里)의 고인돌군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과 정명호(鄭明鎬)가 남평역 동북부의 고인돌군(23기)으로 보고한 것은 이 고인돌군을 지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