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송암동 집터와 인접해 있으며, 1977년 7월전남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한 바 있다. 산사태로 인해 집터의 대부분이 유실되었고 당시 남아 있던 규모는 남북 1.9m, 동서 2.3m로서 평면형태는 장방형이었다. 바닥은 풍화된 화강암반을 깎고 그 위에 약간의 진흙을 깔았으며, 벽은 약 10㎝ 가량의 높이만 남아 있다.
기둥구멍[柱孔]은 서벽에 셋, 동벽에 둘, 남벽과 북벽에 각각 하나씩 남아 있다. 유실된 관계로 집터 전체의 길이는 알 수 없으나 남쪽 끝 기둥이 있는 곳까지 넣어 동서길이를 2.6m, 남북길이를 1.9m로 하여 넓이를 계산하면 4.94㎡로 기껏해야 한두 명 정도가 살 수 있었던 조그만 방형 움집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이 집터는 주거용이라기보다는 물건의 저장을 위한 창고가 아닌가 추측된다. 기둥구멍에 의해 집터를 복원해본다면 이는 우진각의 형태를 한 움집이 되는데, 남벽의 기둥구멍이 중앙에 위치하는 것으로 본다면 파주의 옥석리나 교화리 집터와 거의 같은 형태이다.
집터 내부에서는 화재의 흔적이 없었고 유물도 전혀 출토되지 않아 이 집터의 폐기는 이주(移住)나 질병에 의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집터의 연대는 이웃 송암동의 원형 집터와 비슷한 것으로 초기철기시대(서기전 300∼0년)에 속하는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