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원산동 주거지 ( )

목차
선사문화
유적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청동기시대 기둥구멍이 중앙에 위치한 집터. 움집터.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청동기시대 기둥구멍이 중앙에 위치한 집터. 움집터.
내용

광주 송암동 집터와 인접해 있으며, 1977년 7월전남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한 바 있다. 산사태로 인해 집터의 대부분이 유실되었고 당시 남아 있던 규모는 남북 1.9m, 동서 2.3m로서 평면형태는 장방형이었다. 바닥은 풍화된 화강암반을 깎고 그 위에 약간의 진흙을 깔았으며, 벽은 약 10㎝ 가량의 높이만 남아 있다.

기둥구멍[柱孔]은 서벽에 셋, 동벽에 둘, 남벽과 북벽에 각각 하나씩 남아 있다. 유실된 관계로 집터 전체의 길이는 알 수 없으나 남쪽 끝 기둥이 있는 곳까지 넣어 동서길이를 2.6m, 남북길이를 1.9m로 하여 넓이를 계산하면 4.94㎡로 기껏해야 한두 명 정도가 살 수 있었던 조그만 방형 움집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이 집터는 주거용이라기보다는 물건의 저장을 위한 창고가 아닌가 추측된다. 기둥구멍에 의해 집터를 복원해본다면 이는 우진각의 형태를 한 움집이 되는데, 남벽의 기둥구멍이 중앙에 위치하는 것으로 본다면 파주의 옥석리나 교화리 집터와 거의 같은 형태이다.

집터 내부에서는 화재의 흔적이 없었고 유물도 전혀 출토되지 않아 이 집터의 폐기는 이주(移住)나 질병에 의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집터의 연대는 이웃 송암동의 원형 집터와 비슷한 것으로 초기철기시대(서기전 300∼0년)에 속하는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참고문헌

「광주송암동주거지발굴조사보고」(최몽룡, 『한국고고학보』 4, 1978)
『광주송암동주거지·충효동지석묘』(최몽룡, 전남대학교박물관, 1979)
집필자
최몽룡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