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장(仲章), 호는 제남(濟南). 할아버지는 권근중(權謹中)이고, 아버지는 증이조참판 권대윤(權大胤)이며, 어머니는 순천김씨(順天金氏)로 현감 김두명(金斗明)의 딸이다. 숙종대에 영의정을 지낸 권대운(權大運)의 조카이다. 이민구(李敏求)에게 수학하였으며, 허목(許穆)을 사사하였다.
1658년(효종 9) 생원시에 합격하고, 1668년(현종 9)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여러 벼슬을 거쳐 홍문관교리·사헌부지평 등을 지냈고, 평안도와 경상도의 암행어사로 발탁되기도 하였다.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 때에 허적(許積)·윤휴(尹鑴) 등의 당인으로 연루되어 북평사(北評事)에서 파직되어, 처향(妻鄕)인 김포 제진(濟津)에서 여러 해를 보냈다.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다시 등용되어, 대사간·황해도관찰사·공조참판·병조참판·성균관대사성·한성부좌윤·개성부유수 등을 역임하였다.
1694년 갑술옥사로 파직되어 향리에서 후진을 가르치면서 여생을 마쳤다. 기사환국 때 박태보(朴泰輔)·오두인(吳斗寅)·이세화(李世華) 등이 인현왕후 민씨의 폐출을 반대하는 상소문 때문에 화를 당하자, 반대파의 입장에서 이들을 비호하는 구제소를 올렸으므로 그 후손들로부터 재생의 은인으로 추앙을 받았다. 저서로는 『제남집』 27권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