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 김시화(金時和)가 지은 기행문. 이 기행문은 1853년(철종 4) 손한영(孫漢永)이 시문 4권과 함께 간행한 ≪죽하집 竹下集≫에 수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묘향산은 해동(海東)의 명산으로 태백산이라고도 한다.
단군이 이 산의 단목(檀木) 아래 내려와서 동국(東國)의 초매(草昧)한 생민(生民)의 주인이 되었고, 휴정(休靜)이 산 속에서 수도하다가 임진란을 당하여 수제자 송운(松雲 : 惟政)·뇌묵(雷默)으로 하여금 국가를 지키게 한 인걸지(人傑地)로서 더욱 빛이 난 산으로 유명하다.
그 경치가 금강산보다 뛰어나고 그 영특하고 기이한 자취가 보통이 아니어서 예로부터 선산(仙山)이라고 일컬어진다. 김시화가 변방을 다스리던 중 중추 16일 향산사(香山寺)를 순찰하러 가는 기회에 유력(游歷)한 견문과 감회를 적은 것이다.
스님이 거처하는 명월당(明月堂), 단군대(檀君臺)의 석굴, 서산암(西山庵)에 있는 휴정의 옷과 탁발(托鉢) 등 묘향산에 있는 유적과 유물을 소개하고 있다. 이 글은 묘향산을 중국의 천주봉(天柱峯)에 대조하여 기술하고 있음이 특징이며, 표현이 추상적이고 묘사적이지 않은 것이 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