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성지(性之), 호는 오우당(五友堂). 아버지는 군자감주(軍資監主) 김안계(金安繼)이며, 어머니는 월성이씨(月城李氏)로 이중립(이中立)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주가 뛰어나 15세 미만에 경사(經史)를 섭렵하였으며, 가르침을 받지 않고도 대유학자로 성장하였다.
1623년(인조 1)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파방되었고, 1642년에 다시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관리로 임용되지 못하였다. 그 뒤 초옥을 짓고 송(松)·죽(竹)·매(梅)·국(菊)·연(蓮)을 심고 ‘오우당’이라 호를 삼아 학문연구에 힘쓰는 한편, 후학들을 모아 지도하였다.
장현광(張顯光)은 그를 유림노성(儒林老成)이라 칭찬하였으며, 전식(全湜)·유진(柳袗) 등 당시 인사들로부터 격찬을 받았다. 그는 『소학』에 대하여 남달리 공부했다. 구암정사(龜巖精舍)에 봉안되었으며, 저서에는 『오우당집(五友堂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