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월성(月城). 자는 문백(文伯), 호는 청허재(淸虛齋). 아버지는 진사 손광호(孫光皜)이며, 어머니는 장수황씨(長水黃氏) 별제(別提) 황계옥(黃季沃)의 딸이다.
1558년 ‘신라옥적(新羅玉笛)’이란 제목으로, 실시한 시험에 발탁되었다. 1568년 진사에 올랐으며, 그 후 여러 번 향시에 응했으나 적중하지 못하자 다시는 응시하지 않고 성리학에 더욱 힘을 기울였다. 조호익(曺好益)·이정(李楨)·구봉령(具鳳齡)·조목(趙穆)·이영도(李詠道)·최현(崔睍)·조정(趙靖)·임용재(林慵齋)·신지제(申之悌)·금란수(琴蘭秀)·금응협(琴應夾)·금응훈(琴應壎) 등과 도의(道義)의 교우를 맺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집경전(集慶殿)에 나아가 태조의 영정을 예안(禮安) 이영도(李詠道)의 서당에 옮겨 봉안하고, 오성십철십이현(五聖十哲十二賢)의 위패를 금곡사(金谷寺)에 모셔 놓고 가족을 이끌고 죽장산(竹長山) 속에 들어 갔었다.
같은 해 조정에서 집경전참봉(集慶殿參奉)·정릉참봉(靖陵參奉)에 임명하였으나 부임하지 않고 수운정(水雲亭)을 짖고 세월을 보냈다. 손엽은 성리학에 대해 깊이 연구하였으며, 저서로는 『청허재집(淸虛齋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