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권 5책. 석인본. 1969년 아들 윤종(潤鍾)과 문인 이영교(李英敎), 종질 문락(文洛) 등에 의해 편집, 간행되었다. 권두에 김동진(金東鎭)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남병기(南炳基)의 발문과, 이병두(李炳斗)·이병문(李炳文)의 후지가 있다. 규장각 도서와 영남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2에 시 217수, 권3∼6에 서(書) 109편, 권7·8에 잡저 18편, 권9에 서(序) 4편, 기 15편, 권10에 발 2편, 잠 2편, 상량문 2편, 애사 4편, 뇌문(誄文) 5편, 축문 3편, 제문 12편, 권11에 전(傳) 1편, 비(碑) 1편, 묘지명 1편, 묘갈명 5편, 행장 4편, 유사(遺事) 2편, 권12에 부록 4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잡저의 「인극구도(人極舊圖)」·「인극개도(人極改圖)」·「합도(合圖)」·「도설(圖說)」·「도해(圖解)」 등은 심성에 대한 원리를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에 의거해 도식화한 것이다. 1906년에 쓴 「인극도설후서(人極圖說後敍)」에서 조상우(趙相禹)의 심성도(心性圖)를 정양(靜養)이 수정한 것을 다시 수정해 작성한 것임을 밝히고, 주돈이와 주희(朱熹)의 학설을 절충해 태극도의 원리와 심성의 상관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독율곡집여우계성씨사칠왕복서(讀栗谷集與牛溪成氏四七往復書)」는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이 6년간이나 주고받은 성리에 대한 논변서를 읽고 소감을 밝힌 것으로, 학문에 대한 논변과 비평은 신중을 기해야 하며, 논증을 확실히 갖춘 뒤 반론을 제기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자유변(自由辨)」은 근대에 일어나는 자유사상을 악용해 사설(邪說)이 생기고 기강이 문란해져 전통적인 예절이 파괴되어가는 것을 개탄한 글이다. 그밖에도 「예설」·「경전해석」 등 많은 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