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덕왕이 죽은 뒤 김균정(金均貞)과 김제륭(金悌隆) 사이에 왕위쟁탈전이 벌어져 시중(侍中)인 김명은 아찬(阿飡) 이홍(利弘)과 함께 김제륭을 즉위시켰는데, 이가 곧 희강왕이다.
희강왕을 즉위시킨 공으로 김명은 상대등에, 이홍은 시중에 각각 임명되었다. 그러나 838년(희강왕 3) 정월에 상대등으로서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김명은 이홍과 더불어 군사를 동원하여 왕의 근신들을 살해하자 이에 희강왕은 궁중에서 목매어 죽었다. 이에 김명이 즉위하여 왕(민애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