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구산성은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구면 월전리와 선암리의 경계를 이루는 봉두산(鳳頭山)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는 석성이다. 금구면에서 동쪽으로 2㎞ 정도 떨어진 곳에 해발 250m 정도 되는 봉두산이 자리하고 있는데, 옛 금구현(金溝縣)의 진산이 되는 산이다. 산성은 이 봉두산의 정상부를 테뫼식으로 에워싼 석성이다. 정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것은 알기 어렵지만, 전체 성벽의 둘레가 약 900m에 이르는 것과 약 3m 정도 높이의 성벽이 100m 정도 남아 있는 것, 동쪽의 완만한 평탄 대지에 우물이 1개소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금구산성은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구면 월전리와 선암리 사이의 봉두산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월전리산성으로 부르기도 한다. 산성이 자리한 봉두산은 금구면에서 동쪽으로 2㎞ 정도 떨어져 있는데, 산성이 자리한 관계로 산성봉, 성재산 등으로도 부르며, 해발 250m에 이르는 제법 높은 산봉으로, 금구현의 진산이다. 봉황산은 봉황이 하늘을 나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산성에 대해서는 정밀 조사가 이루어진 바 없고 간단한 지표 조사만 이루어졌다. 산성의 전체 둘레는 약 900m에 이르고 있으며. 성벽은 대부분이 붕괴된 상태다. 동남쪽 성벽이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인데, 여기에서 보면 높이 3m 정도의 성벽이 100m 정도 남아 있다. 성벽은 자연 할석을 이용하여 허튼층쌓기 방식으로 축조하였다. 동남쪽 성벽을 제외한 대부분의 성벽은 이미 붕괴된 상태다. 성벽이 붕괴된 다음에 성내의 토사(土沙)가 흘러내려 성벽을 덮고 있기 때문에 마치 토성처럼 보이는 구간도 있다. 처음에는 토성으로 쌓았다가 나중에 석성으로 개축하였다는 설명도 그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지만 잔존 상태로 볼 때 원래부터 성벽 전체를 석성으로 축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성벽이 붕괴되어 산성과 관련된 부대시설로 건물지와 우물터만 알려져 있다. 규모가 큰 산성이기 때문에 성문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성벽이 붕괴되어 성문의 흔적은 지표상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 대신 성내에는 건물지로 보이는 평탄면이 남아 있다. 특히 동쪽의 완만한 평탄면에는 우물 1개소가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평탄면을 중심으로 나말여초기의 토기편, 기와편과 조선시대 기와편 등이 수습된다.
산성이 자리한 금구현은 원래 백제의 구지지산현(仇知只山縣)이 있던 곳으로, 통일신라 때 금구현(金溝縣)으로 고친 후 조선시대에까지 이르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봉두산이 금구현의 동쪽 2리 지점에 있는 것으로 되어 있고, 성황사는 동쪽 1리 지점에 있다고 되어 있다. 이로써 볼 때 금구산성은 금구현의 치소성일 가능성이 있다. 다만 그 시기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