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시는 2013년 '남원 교룡산성 종합정비계획'을 시작으로, 2014년부터 2021년까지 교룡산성의 성벽과 북문지, 집수 시설, 건물지 등을 본격적으로 발굴 조사하였다. 그 결과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구와 유물이 출토되었다.
교룡산성의 축성 시기에 대한 관련 기록은 없다. 그러나 이 지역이 백제의 고룡군 지역이었던 사실로 미루어, 백제 때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있다. 이외에 당나라 장군 유인궤(劉仁軌)가 쌓았다 하여 '유인궤성'으로 불리기도 하며, '설인귀성(薛仁貴城)'이라고도 한다. 통일신라 때 남원 지역에 남원 소경(南原小京)이 설치되고, 남원 소경에 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 만큼 이때 성이 만들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발굴 조사 결과 통일신라 때까지로 소급할 수 있는 유구와 유물이 출토되었다.
교룡산성은 교룡산(蛟龍山)의 정상부에서 중복(中腹)에 걸쳐 축조된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성벽의 둘레는 3,289m에 이르며, 바른층쌓기를 한 구간과 허튼층쌓기를 한 구간이 있다. 성내에는 성문과 건물지, 집수지, 사찰, 우물터 등의 부대시설이 남아 있다. 정문인 동문지는 홍예문과 옹성으로 되어 있으며, 서문지는 어긋문 형식, 남문지는 개거식으로 되어 있다. 북문지에서는 통일신라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구와 옹성이 확인되었다. 그밖에 성내에서 군기고 터로 전해오는 건물지와 집수지 등이 발굴되었다.
교룡산성이 위치한 남원은 영남에서 호남으로 넘어오는 관문이었기 때문에,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교룡산성은 조선시대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특히 교룡산성은 고려 말에는 이성계를 비롯한 고려군이 왜구를 상대로 황산대첩을 이끌어낸 바탕이 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