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읍성(藍浦邑城)은 2003년에 성곽에 대한 정밀 지표 조사를 한 결과 성곽의 둘레 및 성의 부대시설이 발견되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회에 걸쳐 시굴 조사가 이루어졌고, 2019년에는 서 · 남 치성(雉城)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이때 성벽 바깥쪽으로는 하천 벽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돌로 쌓은 '호안석축'을 갖춘 해자가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다. 2020년에도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동문지, 서문지, 남문지와 남쪽 벽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확인되었다.
고려 말 · 조선 초에 건설된 연안 읍성(延安邑城)이 그렇듯 남포읍성 역시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세종실록지리지』 「남포현조」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 공양왕 2년(1390)에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 지역에 진성(鎭城)을 축조하였다. 그런데 『세종실록』을 보면, 세종 27년(1445)에 중단되었던 성 건축 사업을 계속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남포읍성은 세종 27년에서 문종 1년(1451)사이에 완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종실록』에는 성의 둘레가 2,476척, 높이 12척, 여장 높이 3척, 적대 5개, 성문 3개, 옹성이 3개 있고, 성내에 샘이 2개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성밖 2리쯤 되는 곳에 하천을 막아 물을 끌어들인 저수지가 있으며, 해자는 완성하지 못했다고 적혀 있다. 이러한 남포읍성의 형태는 조선 후기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근의 발굴 조사에서 해자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문종 이후 어느 시점에 해자를 추가로 완성했음을 알 수 있다.
평지에 자리한 남포읍성은 평면의 네모 반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동북, 동남, 서북, 서남 방향에 치성이 각각 1개씩 있으며, 성문은 동문, 서문, 남문 3개소가 있다. 성문 밖으로는 각각 옹성이 있다. 1872년에 제작된 고지도를 보면 객사, 동헌, 내아, 사령청, 공수청(公需廳), 작청(作廳), 장청(將廳), 향청(鄕廳), 형청(刑廳), 책실, 군기책실, 환창 등이 표시되어 있다.
남포읍성은 일반적인 읍성과 달리 평면의 네모 반듯한 모양으로 지어졌다. 이 성은 세종 27년(1445)에서 문종 1년(1451)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조선 초기의 읍성 건축법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아울러 1872년에 제작된 고지도에는 당시의 건물들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성내 건축물의 위치, 비정 및 읍성의 구조를 알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