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산성 ()

건축
유적
국가유산
삼국시대의 산성,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에 위치한 석성.
이칭
이칭
금돌성(今突城), 상주산성(尙州山城), 보문성(寶門城), 백화고성(白華古城), 백화성(白華城), 백화산고성(白華山古城)
유적
건립 시기
삼국시대
관련 국가
신라
높이
3m
둘레
6,183m
면적
1,259,795㎡
소재지
경상북도 상주시
시도문화재자료
지정기관
경상북도
지정번호
제131호
지정일
1985년 08월 05일
소재지
경상북도 상주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백화산성은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에 위치한 삼국시대 석성이다. 이 산성은 660년 당나라가 백제를 공격하기 위해 출병하였을 때 신라 태종무열왕이 머물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 때 몽고의 5차 침입 시 이곳에서 적극적으로 항전하여 몽고군을 물리치기도 하였다. 포성봉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린 능선과 그 사이의 계곡부를 에워싸면서 산성을 쌓았다. 성벽은 일반적인 삼국시대 산성과 달리 내성와 외성으로 이루어진 이중 성벽으로 되어 있으며, 둘레는 6,183m에 이른다. 성문과 건물지, 암문지, 망루 등의 부대시설이 있다.

정의
삼국시대의 산성,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에 위치한 석성.
발굴 경위 및 결과

상주 백화산성(白華山城)은 금돌성이라고도 부르는 산성인데, 660년에 당나라가 백제를 공격할 때 신라 태종무열왕이 머물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 때 몽고(蒙古)가 5차 침입을 하였을 때 민 · 관이 함께 이곳에서 항전하였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이 산성을 근거지로 의병 활동이 전개되기도 하였다. 산성이 나날이 훼손됨에 따라 현황을 파악하고, 정비 복원을 위한 기초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정밀 지표 조사를 실시하였다.

건립 경위

백화산성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축성된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이로 인해 산성의 건립 경위도 분명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산성의 위치가 영남에서 호서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라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지리적 이점을 염두에 두어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변천

백화산성에 대한 지표 조사에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기와편과 자기편 등이 수습되었다다. 삼국시대까지 소급할 수 있는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산성이 본격적으로 활용된 것은 고려에서 조선 시기로 보인다.

형태와 특징

백화산성은 경상북도 상주시와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사이에 있는 백화산 정상부부터 중복에 걸쳐 축조된 포곡식(包谷式) 성이다. 이 성은 일반적인 산성과 달리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 성벽의 둘레는 6,183m에 이른다. 성내의 지형은 서고동저형(西高東低型)으로 되어 있다. 성벽은 자연 할석(割石)을 이용하여 허튼층쌓기 방식으로 축조하였다. 경사가 험한 곳을 지날 때에는 성벽을 쌓지 않은 구간도 있다. 성내에는 4곳의 문지와 암문 2개소, 사찰 2개소, 우물 5개소, 계곡 1개소, 수문지 2개소 , 건물지 6개소 등이 있다.

의의 및 평가

백화산성은 660년에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했을 때 신라 태종무열왕이 머물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 때 몽고의 5차 침입 시 황령사(黃嶺寺)의 승려 홍지(洪之)가 몽고군을 물리쳤던 곳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에는 산성의 기능을 잃은 고성(古城)으로 남아 있었으나 난을 피하여 농성하는 장소로 활용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
『삼국사기』
『상산지(商山誌)』
『신증동국여지승람』
『중모지(中牟誌)』
『중산지(中山誌)』

단행본

『백화산 문화 유적 지표 조사 보고서』(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1998)
『상주 금돌성 지표 조사 보고서』(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2001)
『상주지구 고적조사 보고서』(단국대학교출판부, 1969)
『한국의 성곽과 봉수』(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 1989)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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