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리 산성(九城里 山城)에 대한 발굴 조사는 이루어진 바 없다. 다만 1998년 충남대학교 고고학과에서 지표 조사를 실시한 후, 1999년과 2000년에 지표 조사를 추가로 실시해 산성의 축조 시기를 짐작해 볼 수 있는 기초 자료를 수습하였다.
구성리 산성은 관련된 기록이 없고, 발굴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아 성이 만들어진 정확한 경위를 알 수 없다. 다만 갑천 근처 평지에 솟은 나지막한 구릉 위에 산성이 위치하고 있어서 전투용 산성이라기보다는 행정이나 사무를 담당하던 치소성(治所城)이 아닐까 하는 견해가 제시된 바 있다.
구성리 산성은 해발 87m의 성두산 정상부에 위치한 토성이다. 그러나 다른 산성들과 달리 성두산 정상부를 에워싼 북성(北城)과 거기에서 남쪽으로 길게 늘어진 능선을 에워싼 남성(南城)으로 이루어져 있다. 북성은 성두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원래의 지형을 깎아 성벽을 만들거나 판축의 형태로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평한 산봉우리 정상부를 에워싸는 형태로 성이 건축된 것이어서 성의 내부가 거의 평평하다. 특히 성의 한가운데는 주변보다 7~10m 정도 높게 마안형(馬鞍形)으로 조성된 평탄면이 있는데, 이는 장대지(將台址)로 알려져 있다. 성문은 북성에서 동문지 1개소만 확인되었다. 북성과 남성이 만나는 성벽에 성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흔적은 찾지 못했다.
구성리 산성은 나지막한 구릉 위에 있는 산성이 토성으로 이루어져 있어 백제 노사지현(奴斯只縣)의 치소성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한편, 충남대학교 고고학과와 백제연구소에서 이 산성에 대한 간단한 지표 조사와 제토(除土) 작업을 진행해 토기편과 기와편을 수습하였다. 전체 성벽 중 극히 일부를 제토한 것이나, 수습된 기와편은 산성을 만들던 시기에 사용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데 이 토기편은 9세기 후반에서 10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 산성을 백제 노사지현의 치소성으로 보던 기존의 견해와는 시기적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구성리 산성은 대전 지역 최대 하천인 갑천 주변에 있고, 나지막한 구릉 위에 만들어진 토성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산성이 아닌 치소성으로 알려져 있었다. 특히 산성의 위치가 백제 노사지현이 있던 곳이어서 노사지현의 치소성으로 보는 견해가 있었다. 그러나 이 산성에 대한 지표 조사와 제토 작업을 통해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이르는 토기편이 수습되었기 때문에, 발굴 조사를 통해 성이 건축된 시기를 명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