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창읍성에 대해 둘레가 3,080척이며 높이는 12척인 성으로 성내에 연못 2개소와 우물 4개소가 있다고 적혀 있다. 『동국여지지』에는 북문이 하나 있다는 사실이 덧붙여져 있다.
고창읍성은 고창 지역의 진산이라고 할 수 있는 반등산을 에워싼 형태로 축조되었다. 반등산이 고창읍의 남쪽에 있어 읍성은 북쪽을 향해 축조되었다. 따라서 읍성은 남고북저(南高北低)의 지형에 따라 지어졌으며, 북문이 정문이다. 성벽에 '제주시(濟州始)', '화순시(和順始)', ‘나주시(羅州始)’ 등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전라도의 여러 고을을 동원하여 성을 쌓은 것을 알 수 있다. 아울러 '계유년(癸酉年)'에 축조했다는 명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단종 1년(1453) 혹은 그 보다 이른 태조 2년(1393)에 읍성이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성벽은 일반적인 읍성처럼 자연 할석을 이용하여 허튼층쌓기 방식으로 축조하였다. 성벽의 하단에서 상단으로 올라갈수록 사용된 성돌의 크기가 작아진다. 성돌과 성돌 사이에는 틈이 많아 작은 쐐기돌 같은 것으로 메워 넣었다. 성돌 중에는 초석이나 당간 지주(幢竿支柱) 같은 것들도 들어 있어 폐사지 같은 데서 옮겨온 돌도 성을 쌓는 데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읍성과 관련된 부대시설로는 성문, 옹성(甕城), 치성(雉城), 건물지, 우물, 연못, 수구문 등이 있다.
성문은 동문, 서문, 북문이 있다. 그중 현재의 고창 읍내 방향으로 통하는 북문이 정문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3개의 성문에는 옹성이 마련되어 있으며, 성벽을 따라 모두 6개소의 치성이 있다. 연못 2개소에 우물도 4개소 있고 수구지(水口址)도 두 군데 있다. 성내에는 모두 22채의 관아 건물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북문의 문루인 공북루(拱北樓)이다. 읍성의 정문은 홍예식(虹霓式)으로 만드는 것이 보통인데, 고창읍성의 공북루는 주춧돌 위에 문루를 세우고 문을 만들었다. 즉 고창읍성의 정문 격인 공북루는 마치 관아의 외삼문(外三門)과 같은 형태를 띠고 있는 특징을 지닌다.
고창읍성은 일반적인 다른 읍성과 달리 방어 기능을 강화한 읍성이다. 따라서 읍성을 읍내의 한가운데에 만든 것이 아니라 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반등산(半登山)에 세웠다. 반등산은 고창의 진산(鎭山)으로 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고창읍성은 이러한 반등산의 정상부에서 산자락에 걸쳐 성이 축조된 것이다.
한편, 부녀자들이 고창읍성을 쌓았다는 전설이 있다. 이러한 전설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부녀자들이 매년 ‘성밟기’ 행사를 하며 전승되고 있다. 성밟기를 하면 잔병 없이 오래 살고, 극락왕생한다는 속설이 있는데, 특히 저승문이 열리는 윤달에 성을 밟으면 더욱 좋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