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노성산성(論山 魯城山城)은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과 상월면 사이에 있는 백제 산성이다. 산성이 있는 노성산은 해발 348m의 비교적 높은 산이다. 산성의 북벽이 노성산의 정상부를 지나는 데 비해 남벽은 산의 중복까지 내려와 있어 북고남저, 삼태기식 형태를 하고 있다. 성벽의 둘레는 894m이고, 장방형으로 가공한 성돌을 이용하여 바른층쌓기로 성을 쌓았다. 산성과 관련된 부대시설로는 성문 3개소와 건물지, 우물지 등이 있으며, 조선시대에 사용된 봉수대도 있다. 이 산성을 백제 열야산현(熱也山縣)의 치소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논산 노성산성(論山 魯城山城)은 성벽의 둘레가 894m에 이르는 비교적 큰 규모의 산성이다. 이 산성은 학술적으로 가치가 높지만 정확한 성의 규모와 성내 시설물 현황이 자세하게 파악되지 않았다. 따라서 성벽의 규모와 성내 시설물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지표조사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사적으로 지정된 후에는 산성을 정비하고 복원하기 위하여 성벽과 성문지를 중심으로 6차례에 걸친 시굴 및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남문지, 서문지 및 서벽의 일부가 발굴되어 성문의 형식, 구조, 축성법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논산 노성산성을 축조한 경위나 목적은 관련 기록이 없어서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산성이 황산벌에서 사비도성에 이르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는 만큼 백제가 사비도성을 방비하기 위하여 산성을 축조한 것이 아닐까하는 견해가 있다.
논산 노성산성이 어떠한 기능을 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백제 부흥 운동기에 등장하는 이례성(爾禮城)을 노성산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문헌상으로는 논산 노성산성은 조선시대에 편찬된 지리지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 산성은 『세종실록지리지』에 주산석성(主山石城)으로 나온다. 주산석성은 그 둘레가 350보(步)이고, 성내에 샘이 3군데 있어 일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성내에 군창(軍倉)이 있고, 봉화대도 있었다. 이 봉화대는 남으로는 은진의 노산(蘆山)과 이어지고, 북으로는 공주의 효포산(曉浦山) 봉수와 이어진다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노산성(魯山城)으로 나오는데, 성의 둘레는 1,950척(尺), 높이는 8척이며, 성안에는 4개의 우물이 있다고 하였다. 『동국여지지』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다만 노성산성이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성곽조에 기록되어 있는 데 비해 『동국여지지』에는 고적(古蹟)조에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노성산성은 조선 후기에 이르면 이미 폐성(廢城)된 상태였던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논산 노성산성은 노성산 정상부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두 개의 가지능선을 에워싸면서 축조되었다. 따라서 성은 전체적으로 삼각형 모양이며, 지형적으로는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북고남저(北高南低)의 삼태기식 모양을 하고 있다. 성벽은 장방형(長方形)으로 가공한 성돌을 한 단씩 수평을 맞추는 바른층쌓기로 축조하였고, 일부 구간에서는 그렝이질을 하여 성돌과 성돌의 이가 잘 맞도록 견고하게 축조하였다. 그러나 현재 노성산성의 성벽은 대부분 붕괴된 상태이다. 다만 남벽의 일부 중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는 구간을 보면 성벽의 높이가 7m에 이르는 곳도 있다. 성문은 북문지, 남문지, 서문지가 남아 있는데, 모두 개거식(開渠式) 구조이다. 기록에 의하면 성내에는 3~4개소의 우물이 남아 있어 일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도 3개의 우물 터가 남아 있다. 성내에는 건물지로 보이는 평탄면이 곳곳에 남아 있으며, 이곳에서 기와편, 토기편, 자기편 등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논산 노성산성은 성벽 전체를 장방형으로 가공한 성돌로 축조했으며, 성돌과 성돌 사이에 틈새가 거의 없을 정도로 견고하게 쌓아올린 산성이다. 산성이 있는 곳이 백제 열야산현(熱也山縣, 현재 충청남도 논산) 지역이기 때문에 이 산성을 열야산현의 치소성(治所城)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