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광역시 유성구 계산동에서 이상룡(李象龍)의 수운교(水雲敎)로부터 독립하여 세운 종교이다. 박성호는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초정리에서 태어나 일찍이 천도교에 입도하였고, 수운교로 옮겨 주요간부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 속에서 1938년 이상룡이 일본의 진종불교(眞宗佛敎)와 합세할 것을 약속하고 수운교를 불교화하자, 이를 반대하던 박성호는 수운교를 탈퇴하여 대전의 서쪽 ‘삼밭’이라는 곳에서 동학 교리를 고수하는 ‘대동교’를 세우고 자신이 교주가 되었다.
그 뒤 신도내 백암동으로 이전하여 상당한 신자들을 확보하였다. 이 때 사람들은 박성호를 따르는 신자들을 ‘수운교별파’라고 불렀다. 1966년 박성호가 죽자 그 동안 박성호를 조력하며 활동하던 원용문(元容文)이 그 뒤를 계승하였다.
원용문은 1970년 1월 16일 충남 논산군 두마면 부남리에서 수운교라는 간판을 바꾸어 ‘동학회중앙본부(東學會中央本部)' 일명 '수운심연수회(水雲心法硏修會)’라는 새 간판을 달고 출발하였다.
이 후 그는 동학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창립된 종교인 증산교, 대종교와도 유대를 맺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증산교단의 각파 대표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연합기구 결성에 힘을 기울여 1975년 ‘동학종단 협의회’를 결성했는데 여기에는 15개의 종단이 참여하였다고 한다.
1984년 계룡산민간인철거계획에 따라 현 대구광역시 서구 산직동으로 옮겼다. 신앙의 대상이나 사상은 수운사상과 같다.
다만, 사람을 사랑하기를 자기자신처럼 여기라는 취지와 성(誠) · 경(敬) · 신(信), 수심정기(守心正氣) 수행으로 포덕천하(布德天下) · 도성입덕(道成立德)하기를 권하며, 특히 최제우(崔濟愚)의 ‘심(心)은 영부(靈符)인 동시에 만법의 왕이요, 천성(千聖)의 어머니’라는 심법을 알고 활용할 줄 아는 수도의 중요함을 강조한다.
매년 2회의 기념행사와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치성을 드린다. 현재 신도수는 그리 많지 않으나 큰 행사 때는 백여명씩 모여들기도 한다. 주요경전은 『동경대전(東經大全)』을 비롯한 천도교의 경전과 『동도전서(東道全書)』 · 『용주선생봉명서(龍霔先生奉命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