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팔작지붕건물. 1972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742년(영조 18) 동래부사 김석일(金錫一)이 창건했다고 하며, 당시 동래도호부(東萊都護府)의 문루(門樓)로 지은 것이다.
높은 주초석 위에 놓인 건물로 공포(栱包)는 2익공(二翼工)이고 마루는 귀틀마루이다. 누각 위에는 큰 북이 달려 있어서 인정(人定)과 파루(罷漏)를 알렸다고 한다. 원래 동래도호부터였던 현 동래군청 앞에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 때 현위치로 옮겼다.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관아(官衙)의 문루로서, 정면에는 ‘東萊都護府’라 쓴 편액(扁額)이 걸려 있고, 후면에는 ‘望美樓’라 쓰여진 편액이 걸려 있다.
옛날 한양으로부터 부임해 온 어느 동래부사가 임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하여 이 누각을 망미루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오고 있으며, 1919년 동래의 3·1운동은 이 누각 위에서의 만세삼창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