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권 7책. 목활자본. 1693년(숙종 19)에 간행되었다. 권두에 권유(權愈)의 서문이 있다. 규장각 도서와 장서각 도서 등에 있다.
권1·2에 시 250여수, 권3·4에 소문(疏文) 7편, 권5에 서(書) 40편, 권6에 설(說) 7편, 논(論) 2편, 기적(記蹟)·정문(呈文)·책제(策題), 권7·8에 서(序)·기(記)·발(跋)·잠(箴)·명(銘)·송(頌)·찬(贊)·상량문, 권9·10에 제문·갈명·지명·묘표·행장, 권11∼13에 독서차기(讀書箚記)·잡저, 부록으로 행장·묘갈명·제문·만사 등이 수록되어 있다.
서(書)에는 주로 경전과 성리에 대한 문답이 많다. 소 가운데 「의례소(儀禮疏)」와 「의례경전상복고증(儀禮經傳喪服考證)」 등은 당시 서인(西人)의 송시열(宋時烈)과 입장을 달리하던 그의 예론(禮論)이 수록되어 있어 주목된다. 그가 남인(南人)으로서 송시열과 반대되는 예론을 견지했기 때문에 황간(黃澗)에 유배까지 당하게 되지만, 반송시열적 예론의 일단을 살필 수 있는 좋은 글이다.
그의 주자(朱子) 중심적인 학문 경향은 『대학』을 비롯한 사서와 『시경』·『서경』·『주역』 등에 대한 「독서차기」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그가 『사서발범구결(四書發凡口訣)』·『주역구결(周易口訣)』·『의례고증(儀禮考證)』·『휘찬여사(彙纂麗史)』·『동사제강(東史提綱)』 등의 다양한 저서를 남긴 것을 볼 때, 그의 박학다식을 짐작하게 한다.
그의 사회·경제적 관심사는 역시 잡저에서 많이 다루어져 있다. 그 가운데 「부세(賦稅)」는 중국 부세법의 변천을 삼대지제(三代之制)·진한지제(秦漢之制)·당제(唐制)·당이후제(唐以後制) 등 네 단계로 구분해 논한 매우 흥미로운 글이다.
「지리지(地理志)」는 우리나라의 지리에 대한 자신의 견지를 요약해 서술한 것이다. “고구려의 땅은 서쪽으로 요(遼)에 달하고 북으로 숙신(肅愼) 땅에 이르렀으며, 여진(女眞)은 고구려의 부락이었다.”는 등의 내용은 오늘의 우리 역사학계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