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1책. 석인본. 후손 박연(博淵)·우열(佑烈) 등이 편집하여 1961년 13세손 창섭(昌燮)이 간행하였다. 권두에 권상규(權相圭)의 서문과 권말에 후손 흥운(興運)·우열 등의 발문이 있다.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권1에 시 94수, 권2에 서(書)·기(記)·서(序)·설(說) 각 1편, 잡저 3편, 제문·행장·전(傳) 각 1편, 부록으로 행장·묘갈명·제문·기·유사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에는 전원생활의 정취를 통해 자신의 내면세계를 읊은 「아양곡(峨洋曲)」·「상매이십운(賞梅二十韻)」 등과 중국 당나라의 시선(詩仙) 이백(李白)의 시를 차운하여 지은 시 등이 주종을 이룬다.
서(序)의 「봉성향록서(鳳城鄕錄序)」는 저자의 고향 봉성현의 자치 규약에 대한 취지 및 규모 등을 서술한 글로서, 당시의 향약 연구에 도움이 된다.
잡저 중 「병자비분록(丙子悲憤錄)」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당시 고향에서 김경조(金慶祖)·응조(應祖) 형제와 함께 의병을 모집한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그 해 12월 9일부터 전란 중에 겪었던 여러 가지 사실을 담고 있어 참고 자료가 된다.
「소청일록(疏廳日錄)」은 1609년(광해군 1) 사마시에 합격한 저자가 성균관유생으로 있으면서 채진후(蔡振後)·강전(姜㙉) 등과 함께 성혼(成渾)·이이(李珥)의 문묘 배향에 반대하는 소를 올리고 귀향한 사건의 전말을 기록하고 있다. 「소유제명록(疏儒題名錄)」은 이호눌(李好訥)·정수익(鄭受益) 등 당시 성균관의 동학(東學)에 있으면서 반대 의견을 개진했던 61명의 인적 사항을 기록한 글이다.
부록의 「사실(事實)」에는 저자가 1624년 이괄(李适)의 난 때 의병의 참모로 활약한 사실과 난을 평정한 뒤 남아 있던 군량을 영의정 이원익(李元翼)에게 보내 국가 재정에 도움이 되게 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