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사일(士一), 호는 반구재(反求齋). 군위현 가곡리(佳谷里) 출신. 아버지는 신상오(申相五)이며, 어머니는 순천박씨로 박정현(朴正鉉)의 딸이다.
신재수는 마을의 수재들을 모아 향음주례(鄕飮酒禮)를 행하고 백록동규(白鹿洞規)와 남전향약(藍田鄕約)을 강론하여 시행 여부까지 검토하였으며, 1866년(고종 3) 병인양요가 일어나 국내가 소란해지자 통고문(通告文)을 작성하여 고을 주민들에게 합심단결하여 외세에 저항할 것을 호소하였다.
한편, 가훈 6조를 지어 자손들에게 경계하도록 하였는데, 학문을 하되 농사를 거들면서 할 것과, 가정불화의 주된 원인이 첩을 얻는 데 있다고 하여, 일부일처제를 권장한 것 등이다. 1892년 적라불로촌(赤羅不老村)으로 이사하여 후진 양성에 진력하였다. 저서로는 『반구재유집(反求齋遺集)』 4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