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주 ()

불교
인물
19세기 후반에, 송광사(松廣寺)를 주요 근거지로 삼아 활동한 부휴계의 승려.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50년 3월 15일
사망 연도
1888년 2월 22일
본관
음(陰)
출생지
전라남도 순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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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문주는 19세기 후반에 송광사(松廣寺)를 주요 근거지로 삼아 활동한 부휴계의 승려이다.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출신이며 부휴계의 적전 묵암 최눌(默庵㝡訥)의 4세 법손으로 법호는 원해(圓海)였고 범해 각안(梵海覺岸)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정의
19세기 후반에, 송광사(松廣寺)를 주요 근거지로 삼아 활동한 부휴계의 승려.
가계 및 인적사항

문주는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출신으로 1850년 3월 15일에 태어났다. 본관은 음(陰)이고 아버지의 이름은 도황(道晃)이다. 문주가 출가하여 배우는 데 뜻을 두자 부모가 “수행하여 성취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큰 죄를 짓는 것이다.”라고 하며 허락했다. 법맥은 부휴계(浮休系)의 주1인 묵암 최눌(默庵㝡訥)의 4세 주2으로 법호는 원해(圓海)이다. 수산원만(守山圓滿)으로부터 법을 전해받았다.

주요 활동

16세에 조계산 송광사(松廣寺)로 출가하여 수산 원만의 제자가 되었다. 20대에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우담 홍기(優曇洪基), 경붕 익운(景鵬益運), 원화 덕주(圓華德柱) 등 이름난 주3들에게 경서를 배웠다. 이밖에 『육경(六經)』과 『사림(詞林)』을 폭넓게 읽었고 32세 때인 1881년에 주4을 하였다.1885년에는 함명 태선(菡溟太先)에게 『선문염송(禪門拈頌)』의 뜻을 물었고, 이듬해 『동사열전(東師列傳)』의 저자 범해 각안(梵海覺岸)을 찾아가 보살계를 받았다. 송광사에서 주로 활동했고 이력 과정의 교재들을 주5 선과 교를 함께 닦았다. 1888년 2월 22일에 주6 주7 39세, 주8은 23년이었다.

참고문헌

원전

『동사열전(東師列傳)』
『조계고승전(曹溪高僧傳)』

단행본

김용태,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 (신구문화사, 2010)

논문

김용태, 「부휴계의 계파인식과 보조유풍」 (『보조사상』 25, 보조사상연구원, 2006)
주석
주1

정통의 혈통에서 정통으로 이어받음. 우리말샘

주2

부처님의 자손이라는 뜻으로, 한 스승으로부터 불법(佛法)을 이어받아 대를 이은 불제자를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3

‘강사’의 높임말. 우리말샘

주4

수행 구도(修行求道)가 다른 이의 사표(師表)가 될 만큼 원만하여 법을 전하는 스승에게서 법맥(法脈)을 이어받는 일. 우리말샘

주5

학문을 닦고 연구하다. 우리말샘

주6

승려가 죽다. 우리말샘

주7

조상으로부터 자손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대(代)의 수. 우리말샘

주8

승려가 된 뒤로부터 치는 나이. 한여름 동안의 수행을 마치면 한 살로 친다.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김용태(동국대학교 교수, 지역불교 및 불교사 연구(조선시대 불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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