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명대선사비문』에 따르면, 스님의 법명은 태선(太先) 호는 함명(涵溟)이다. 그런데 『동사열전』에서는 스님의 법명이 대현(台現)이라고 되어 있다.
1824년(순조 24) 9월 9일 전라도 화순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밀양 박씨로 아버지는 박양구(朴陽九)이고, 어머니는 동복 오씨이다. 14세에 화순 만연사의 풍곡 덕인(豊谷 德仁)에게 갔다가 이듬해에 출가하였고, 장성 백양사의 도암(道菴)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그 후 침명 한성(1801~1876)이 강의하는 순천 선암사 강원에서 5년 동안 경 · 율 · 논의 삼장(三藏)을 섭렵하였다.
선암사 강원에서 강의 요청을 받고 선암사의 남암과 북암에서 강의를 하니, 와서 수학하는 자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주1에 뛰어나서 훗날 비문에서 ‘화엄종주(華嚴宗主)’라고 평가를 받았다.
하루는 대중에게 말하기를 “지난 3천년의 불교는 소승(小乘)의 가르침을 행하였으니, 부처님의 뜻을 세상에 행하려면 마땅히 대승(大乘)의 가르침이 미래 500세에 펼쳐져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지 못한다면 부처님께서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세상의 중생들이 올바른 깨달음을 이루지 못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1866년(고종 3) 경붕 익운(益運, 18361915)에게 선암사 강원을 물려주었고, 훗날 익운은 경운 원기(18521936)에게 강석을 물려주었다. 태선으로부터 원기에 이르는 동안 선암사 강원이 크게 번성하였다.
1902년 1월 26일 가벼운 병이 있더니 목욕 하고 단정히 앉아서 입적하였다.
태선은 일찍이 서석암(瑞石庵)에서 풍곡 덕인의 법등(法燈)을 이었는데, 이는 청허 휴정(淸虛休靜) – 편양 언기(鞭羊彥機) – 풍담 의심(楓潭義諶) – 월저 도안(月渚道安) – 설암 추붕(雪岩秋鵬) – 상월 새봉(霜月璽篈) – 용담 조관(龍潭慥冠) – 규암 낭성(圭岩朗城) – 서월 거감(瑞月巨鑑) – 회운 진환(會雲振桓) – 원담 내원(圓潭乃圓) – 풍곡 덕인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계승한 것이었다.
저서로는 『 치문사기(緇門私記)』 1권이 필사본으로 전한다. 『치문사기』는 불교에서 승려들이 출가 후에 처음 배우는 과목 가운데 하나인 『치문경훈』을 풀이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