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정립이 관직에서 물어난 향리에 돌아와 1623년(인조 1)에 창건하여, 후학을 양성하고 친구들과 교유하며 지냈던 곳이다.
봉서정과 별묘가 남북 병렬형 배치로 되어 있다. 봉서정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목조 기와집이다. 좌로부터 온돌방, 대청 2칸, 온돌방의 형태로 배치되어 있고, 전면 툇간(退間)은 모두 툇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바닥의 높이는 모두 같고 난간은 없으며 부엌이 없는 남부 일자형 민가와 흡사하다.
별묘는 조응인과 아들 조정립을 모신 사당이다. 정면 3칸, 옆면 2칸의 익공(翼工)계 맞배지붕의 목조 기와집이다. 별묘는 봉서정보다 조금 높은 곳에 있으므로 별도의 담장을 둘러 경역을 구분하고, 봉서정 후면에 계단을 두어 중문을 통해 출입하도록 배치하였다.
측면 2칸 중 전면칸은 퇴간으로 폭이 60㎝ 정도로 매우 좁다. 퇴주(退柱)는 원기둥이고 초석은 둥글게 잔다듬을 한 형태로 기단에서 40㎝ 정도 높이이다. 어칸(御間)의 간격은 좌우 협칸(夾間)보다 다소 넓으며 3칸 모두 판장문으로 되어 있다.
처마는 부연(浮椽)이 있는 겹처마로 측면에는 비바람에 구조체가 노출되지 않도록 풍판을 덧대었다. 건물의 배치로 보아 자연을 완상하고 심신을 휴양하는 정자의 역할보다는 조상을 모시고 학문을 닦으며 후학을 지도하는 서원의 성격이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