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무신 하경복의 무덤으로,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원계리에 있다. 1982년 8월 2일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진양하씨 문중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하경복(河敬復, 1377∼1438)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태종 때의 대신 하륜(河崙)의 7촌 조카이다. 그는 조선 초기 북방의 국경지대에 머물면서 국방을 경비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1402년(태종 2) 무과에 급제한 뒤 사복시 부정(司僕寺副正)을 지냈고, 1410년(태종 10) 무과 중시에 급제한 뒤 첨지총제, 경성 등의 병마절제사가 되어 국경의 수비를 담당하였다.
1423년(세종 5) 함길도 도절제사를 거쳐, 1427년(세종 9) 의정부참찬에 올랐다. 1430년(세종 12) 판좌군도총제부사로 함길도병마절제사를 겸임하였다. 1432년 판중추원사가 되어 서울로 올라올 때까지 20년 동안 북방의 국경지대를 수비하였다. 이 때 백성을 사랑하고 야인들을 진무하여 변경의 수비에 만전을 다하였다.
특히, 1433년(세종 15) 정흠지(鄭欽之) · 정초(鄭招) · 황보인(黃甫仁) 등과 진서(陣書)를 편찬할 때 총재로 참여하였는데, 이것이 유명한 『계축진설(癸丑陣說)』이다. 이것을 진도(陣圖)와 함께 간행하여 군사교육의 교재로 삼았다. 1436년(세종 18)에 경상도병마절제사가 되었다. 1438년(세종 20) 별세하여 이곳에 안장되었다. 시호는 양정(襄靖)이다.
묘소는 조선 초기 분묘의 특징을 원형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사각 장방형 석조분이다. 봉분 아래에는 방형으로 호석을 둘렀고, 봉분 주변으로는 ‘ㄷ’자형으로 낮은 석축을 쌓았다.
이 무덤은 사각형 모양으로, 조선 초기 무덤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인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