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포는 사포서를 주관하였기 때문에 사포서의 관장 사무 일체를 책임졌다. 사포서는 왕실 소유의 밭인 원포(園圃)와 왕실에서 필요한 소채(蔬菜)를 공급하기 위한 사무를 담당하였으며, 이를 관리하는 업무를 사포가 맡았다. 초기에는 왕실 소유의 밭에서 직접 재배하여 공급하는 역할을 하였지만 이후 공인에게 구입하여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사포는 1466년(세조 12)에 관제를 개편할 때 처음 등장한다. 당시 침장고를 사포서로 개칭하는 개혁이 있었고, 사포를 설치하여 사포서를 주관하게 하였다. 또한 공조 소관이었던 침장고와 달리 사포서는 호조 소관의 관서로 소속을 변경하였다. 이는 사포서가 침장고와 달리 단순히 왕실의 원포를 관리하는 업무를 넘어서 생산되는 채소를 왕실에 공급하는 업무까지 관장하게 되면서 생긴 변화였다.
1506년(연산군 12)에 일부 관직을 개편하는 과정에서 사포가 일시 혁파되기도 하였으나 중종 즉위 이후 곧바로 복구되었다. 성종 대부터 사포서의 사포는 봉급만 축내는 관직이므로 불필요하다는 건의가 지속되었다. 사포서에는 겸직인 별제와 별검이 7명이나 배치되어 있었으므로 이들만으로 업무를 수행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당시의 건의는 바로 수용되지 않았으나 인조 대 무렵 사포의 관직 제수가 확인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 무렵 혁파된 것으로 보인다. 법제적으로는 영조 대 『 속대전(續大典)』에 사포의 혁파가 기재되어 있다. 이후 별제가 장관의 업무를 대신하였다. 사포서는 1882년(고종 19)에 혁파되고 소관 업무는 호조에 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