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 공양왕 때의 선사인 찬영(粲英)의 문인이다. 1402년(태종 2) 태종은 척불책(斥佛策)의 일환으로 사찰의 숫자를 제한하고, 그 이외의 사찰이 소유한 토지 및 노비를 국유화하여 사찰의 경제적 기반을 붕괴시켰다.
이에 승려들은 조정에 호소하여 몰수된 토지 등을 되돌려받으려 했으나 실패하였으므로, 1403년 정월에 성민은 승려 수백 명을 인솔하고 한양으로 들어와 신문고(申聞鼓)를 울려 왕에게 직접 호소하였다. 그러나 이 일은 결국 무위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