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흥창과 풍저창, 전설사 등에서 각 관서의 업무를 총괄하는 역할을 하였다. 광흥창의 수는 녹봉 반사와 관련된 업무를, 풍저창의 수는 국가 재원의 쓰임과 관련된 업무를, 전설사의 수는 국가의 장막을 공급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데 차질이 없도록 관리하였다. 종친부의 수는 왕자군의 증손(曾孫)들에게 제수하는 관직으로서, 특별한 담당직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숭의전의 수는 고려시대 주요 군왕들에게 제사를 올리는 일을 주관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수라는 관직이 없었다. 수는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처음 설치된 관직이다. 종친부는 1443년(세종 25)에 4품직이었던 영(令)을 정4품인 수와 종4품인 부수(副守)로 구분하는 직제 개편을 단행하였다. 이것이 조선 후기까지 존속되었다.
광흥창과 풍저창의 수는 1466년(세조 12)에 설치되었다. 고려시대의 광흥창과 풍저창 등의 장관직은 종5품직인 사(使)였다. 이 관직은 조선 건국 직후 그대로 계승되었다. 이후 1466년에 불필요한 관직을 혁파하기 위하여 대대적으로 관제를 개혁하였다. 이때 풍저창과 광흥창의 장관직인 사를 고쳐 수라고 하였고 정4품으로 승격하였다. 이는 그대로 『 경국대전』에 수록되면서 조선 말기까지 존속되었다.
전설사는 1466년 관제 개혁 당시 충호위(忠扈衛)를 개편하여 새롭게 관서를 설치하였다. 이때 장관직으로 정4품의 수를 두었다. 숭의전에는 종3품 사, 종4품 수, 종5품 령, 종6품 감을 두었다. 다만 실제 관직 수여는 4개의 관직 가운데 1명만 제수하였다.
조선 후기 편찬된 『 속대전』에 따르면 전설사와 숭의전의 위상이 격하되고 풍저창은 관서가 혁파되면서 수 역시 폐지되었고 종친부와 광흥창에만 존속되었다. 이 역시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당시 근대 관제로 개혁하면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