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계 정봉리 석곽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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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북한 황해북도 신계군에 있는 철기시대 동모 · 부채도끼 등이 출토된 돌덧널무덤. 석곽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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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북한 황해북도 신계군에 있는 철기시대 동모 · 부채도끼 등이 출토된 돌덧널무덤. 석곽묘.
내용

1974년 북한의 조선중앙력사박물관과 사리원력사박물관에 의해 조사되었다. 유적은 예성강 지류가 관통하는 분지의 경사진 언덕에 위치한다.

유적은 비교적 깊게 토광을 파고 그 안에 돌덧널이 안치되어 있다. 토광의 크기는 길이 330㎝, 너비 180㎝, 깊이 210㎝ 정도이며, 남북장축의 구조를 보인다. 토광 내부의 돌덧널은 역시 남북장축으로 크기는 길이 262㎝, 너비 70㎝, 높이 40㎝이다.

돌덧널의 짜임새는 토광바닥의 진흙층을 굳게 다진 뒤 그 위에 20∼30㎝ 정도 크기의 납작한 강돌을 깔고 판석재의 돌로 벽을 3단 또는 4단으로 쌓았다. 벽면에 쓰인 돌의 크기는 길이 40㎝, 너비 30㎝, 두께 10㎝ 가량이다. 돌덧널의 뚜껑은 2매만 남아 확실하지 않으나 남아 있는 돌의 크기가 길이 80㎝, 너비 40㎝, 두께 10㎝ 정도인 것으로 보아 이러한 크기의 판자돌 여러 장으로 뚜껑을 덮은 것으로 추정된다.

토광과 돌덧널 사이의 공간에는 길이 60㎝ 정도의 장대석으로 벽선을 따라 가로로 세워 벽을 보강하고 있다. 돌덧널 위쪽의 토광은 직경 30㎝ 가량의 강돌과 흙을 함께 채워 넣었다.

돌덧널의 내부에는 청회색의 침전토가 차 있었다. 돌덧널의 벽에는 얇은 피막과 벚나무껍질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돌덧널 내부에 목관을 안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돌덧널 안의 동남벽가에서는 동모(銅鉾)·부채도끼[扇形銅斧]가, 서북벽가에서는 한국식 동검과 돌화살촉 등이 발견되었다.

한국식 동검은 등날이 비교적 길게 경부(莖部)에까지 내려온 것으로, 길이 27㎝, 날의 너비 4㎝, 두께 1.2㎝이다. 동모는 자루박는 부분[銎部]이 길고 끝에 구멍이 뚫려 자루에 고정하도록 하였다. 크기는 길이 13㎝, 날의 너비 2.6㎝, 공부의 직경 1.3㎝이다.

선형동부는 주조품(鑄造品)으로서 형태가 양호하며 위쪽으로 2줄의 도드라진 돌대(突帶)가 둘러져 있다. 크기는 길이 5㎝, 너비 3.3㎝, 두께 1.4㎝, 공부의 직경 2.7㎝이다. 돌화살촉은 무경식(無莖式)으로 끝이 뾰족한 삼각형이며 나래 뒷면이 휘어 들어간[彎入] 것과 일직선에 가까운 것이 있다. 길이 6.8㎝, 너비 2.4㎝로 비교적 큰 편이며 두께는 3∼4㎜ 정도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비교적 깊은 토광을 파고 돌덧널을 안치하고 돌을 채워 넣은 이러한 무덤의 구조는 청동기가 일괄로 출토된 대전광역시 괴정동 무덤과 유사하다. 또한 부채도끼의 형태는 요령식 동검문화(遼寧式銅劍文化)단계의 유적에서 출토되는 동부의 형태와 닮아 있다. 형태는 황해도 봉산군 송산리의 솔뫼골유적 출토품과 유사하나 고식(古式)에 속한다.

이 유적의 연대는 부채도끼가 형태상 고식에 속하나 무덤의 구조와 공반유물의 조합상(組合相)으로 보아 서기전 4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1958년 춘하기 어지돈지구관개공사 간략보고」Ⅱ(황기덕, 『문화유산 1959년 1기』, 과학원출판사)
「신계군정봉리돌곽무덤」(라명관, 『고고학자료집』1983년 6집, 과학백과사전출판사)
집필자
조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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