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권 7책. 필사본. 서문과 발문이 없어 정확한 편집 경위를 알 수 없으나 철종 연간에 편집, 필사된 것으로 보인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권1∼6에 시 642수, 권7·8에 계(啓)·소차(疏箚)·정사(呈辭)·계사(啓辭)·밀계(密啓) 219편, 권9에 제문 9편, 표전(表箋) 3편, 발·가장 각 1편, 권10에 포사일기(曝史日記), 권11에 기해일기(己亥日記), 권12에 서행기(西行記), 권13·14에 음빙록(飮氷錄), 권15는 불윤비답(不允批答) 51편, 효종대왕어찰(孝宗大王御札) 5편, 부록으로 배향교서(配享敎書) 2편, 치제문(致祭文) 5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지어진 연대순으로 배열되어 있는데, 첫 작품은 11세 때 지은 「광동(狂童)」이다. 면학을 유도하기 위해 제시한 ‘미친 아이’라는 시제로 어린 시절부터 재기(才氣)를 나타낸 작품이다. 세 임금을 섬기면서 여섯 차례나 영의정에 오른 고관답지 않게 저자의 시는 소박한 야인의 품격을 지녔다.
소차(疏箚)들은 대개 사직소로서 벼슬에 연연해하지 않는 저자의 인품과 왕의 신임이 두터웠음이 나타나 있다. 밀계는 청나라에 사행(使行)해 그 곳의 상황을 적어 비밀리에 올린 계이다. 소와 계에는 이두가 섞여 있다.
「기해일기」는 1659년(효종 10) 5월 4일 효종의 승하일부터 그 달 27일까지의 일기이다. 기해예설(己亥禮說)의 발단이 된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제 문제, 재궁(梓宮: 임금·왕대비·왕비·왕세자들의 유해를 모시는 관)의 가칠(加漆), 능소(陵所)를 정하기까지의 조정 안의 동정을 상세히 기록한 내용이다.
「서행기」는 저자가 세자 책봉을 위해 중국에서 온 사신을 접대하는 종사관으로서 사신들의 무례한 행패를 기록한 것이다.
「음빙록」은 저자가 정사(正使)로서 2차에 걸쳐 내왕한 연행록(燕行錄)으로, 청나라의 일본 원정 때 조선에 원조를 요청한 사실, 조선(朝鮮) 의관(醫官)의 인기가 높아 수행하였던 의관 안례(安禮)가 청 태후를 비롯한 귀족의 병을 고쳐 주었다는 사실 등이 담겨 있다. 이밖에도 효종이 저자에게 군국중사(軍國重事)를 문난(問難)한 어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