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새일교단 (←Jehovah 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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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이유성(李琉性)이 창시한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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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65년 이유성(李琉性)이 창시한 종교.
내용

황해도 신계 출신의 이유성은 월남하여 주로 강원도 지방에서 목회를 했으며, 고려신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하다가 1956년 계룡산 백암동 수도원에서 신비체험을 하게 되었다.

신비체험의 내용은 어느날 밤 기도 중에 용 두 마리가 나타나 덤벼드는데, “네 목숨을 걸고 싸워서 이기면 이 곳에 제단을 주겠다.”라는 소리가 들려와 기도하여 승리하였다는 것이다. 그 뒤 그 자리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새 일을 이루자.”라는 강령으로 1965년 6월 계룡산 백암동에 새일수도원을 건립, 종단이 시작되었다.

1968년에 그가 설교를 하는 도중 하늘로부터 음성이 내려와 “여호와 새일교단”의 교리를 받아 쓰라는 지시가 있어 자신의 입을 통해 나오는 소리를 제자들로 하여금 받아 적게 하였는데, 그 내용이 기독교 종말관과 새일교단의 교리 그리고 교단의 법규가 되었으며, 그 제자들이 나가서 여호와새일교단이라는 이름의 독립 교단을 세웠다고 한다.

이유성은 매우 풍부한 신비체험을 가진 교주로서 매사를 신비체험에 의해 해결해나갔다고 하며 그가 생전에 쓴 저작물들도 하늘의 계시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말세비밀』이라는 책자는 교주의 사상적 핵심을 담은 것으로 주1 4장부터 14장까지를 나름대로 해석한 것이며, 1967년 8월 15일의 특별기도 중 입에서 술술 나왔다고 하는 『조직신학강해』 · 『선지서강의』 · 『계시록 강의』 · 『말씀의 칼』과 같은 책들도 있다.

1970년 8월부터는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월간지를 발행하였다. 1965년 이후 2, 3년 사이에 전국 35개소의 교회를 지닌 교단으로 성장했으나 1972년 이유성이 심장마비로 죽은 뒤 일곱 번이나 분파를 거듭하면서 교세가 매우 약화되었다.

현재 여호와새일교단에서 파생된 교단으로는 충남 논산시의 새일수도원 복구호소재단, 서울시 용산구 후암동에 있는 새일수도원 말세복음부흥단, 서울시 동작구 대방동에 있는 새일중앙교회(부활파), 수원스룹바벨파 등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9개의 교단이 있다.

예배는 기성 교회처럼 주일예배와 새벽기도회가 있으며, 교주가 계시받은 날을 기념하는 ‘연말성회’, 성전 완공을 기념한 ‘5·15성회’, 이유성의 특별체험과 계시받은 것을 기념하는 ‘8·15성회’, 그리고 새일수도원 창설을 기념하는 ‘9·24성회’ 등의 특별 성회가 있다.

계룡산 신도안에 수도원이 있을 때에는 매월 1일부터 25일까지 수련생들을 위한 수도회가 계속되었다고 한다. 특징적인 것은 말세복음부흥단이라는 조직이 교단에 소속되어 있지만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점이다.

이들은 공산주의자들을 ‘붉은 용’이라 하여 멸공을 교리화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애국애족의 정신 아래 선지서의 예언대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 외,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한국신종교조사연구보고서』(한국종교연구회, 1996)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한국의 신흥종교-기독교편-』(탁명환, 국종출판사, 1972)
주석
주1

신약 성경의 마지막 권. 신자들의 박해와 환난을 위로ㆍ격려하고 예수의 재림과 천국의 도래 및 로마의 멸망 따위를 상징적으로 예언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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