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고종 3) 사위 방학기(方學基)가 편집하고, 1900년(광무 4) 손자 명곤(命坤)이 간행하였다. 권두에 김학성(金學性)의 서문이, 권말에 박재현(朴載鉉)의 발문이 있다.
7권 2책. 목활자본. 규장각 도서와 계명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권수에 유묵인 「난정서(蘭亭序)」 1점, 권1에 시 90수, 권2에 서(書) 10편, 서(序) 2편, 권3에 기(記) 3편, 지(識) 1편, 권4에 장(狀) 7편, 권5에 제문 4편, 잡저 2편, 권6에 묘표 2편, 묘지명 2편, 권7에 묘갈명 10편, 부록으로 언행록 등이 수록되어 있다.
유묵인 「난정서」는 저자가 글씨로 이름이 높았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있다. 옹방강(翁方綱)과 소식(蘇軾)에 연원을 두고 있는 저자의 필법은 매우 단아한 느낌을 준다. 시는 일상생활에서 느낀 것들을 소재로 하고 있으며, 매우 격조가 높다. 저자는 시문으로 당대에 문명을 크게 날렸으며, 특히 신위(申緯)·정약용(丁若鏞)에게 극찬을 받았다.
「초원대가인부지(蕉園待家人不至)」는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부인을 기다리며 지은 사랑의 시다. 「침상희음(枕上戱吟)」 역시 낭만적인 색채가 강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하제귀로음(下第歸路吟)」은 과거에 떨어지고 돌아오는 길의 괴로운 심사를 읊은 내용이다.
「익효발정(翌曉發程)」은 어느 초라한 객사에서 나그네의 시름을 술로 달래다가 새벽에 떠나는 객수를 나타낸 시다. 당시 주막에서는 품격 높은 선비의 새벽 행차에 불을 밝혀주는 풍속이 있었음을 주석에 달고 있다. 서(書)는 분량이 적고 학문적인 내용은 없으나, 저자의 문장 솜씨를 엿볼 수 있다.
잡저 2편은 제목이 없다. 1편은 어느 농부가 부잣집에 초대되어 그 화려함을 보고 돌아와, 분수를 잃고 농사는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망해 버리자 나중에는 체면이 없어 산중으로 도망간다는 풍자적인 내용이다. 2편은 사농공상의 근대적 직업관을 논하고, 농업·공업·상업 등 생산 업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 윗자리에 앉아서 부렴(賦斂)에만 관심이 있거나 자신의 실력 없음보다는 연줄 없음을 탄식하는 선비들은 없느니만 못하다고 주장하였다. 과거제도의 불필요함도 역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