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사기』에는 685년(신문왕 5)에 하주정(下州停)을 혁파하고 완산정을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라는 665년(문무왕 5)에 상주와 하주의 땅을 분할하여 삽량주(지금의 경상남도 양산시)를 설치하였다. 이후부터 상주와 하주의 명칭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옛 상주는 일선주(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하주는 거열주(지금의 경상남도 거창)라 불렀다.
665년 이전에 왕경과 상주 · 하주 · 한산주 · 우수주 · 하서주에 정(停)을 설치하였다. 본래 지방에 주둔한 정에는 왕경 6부인으로 구성된 군사들을 배치하였다가 604년(진평왕 26)에 군사당을 배속하면서 지방민 출신 군사들이 추가되었다.
561년(진흥왕 22)에 건립된 「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에 '비자벌정(比子伐停)'이 나오는데, 비자벌(지금의 경상남도 창녕)은 하주의 주치(州治)였다. 이는 665년 이전에 주치명을 정의 이름으로 삼았음을 알려준다. 현재 『삼국사기』 신라본기 중고기 기록에 나오는 주의 설치와 폐지 관련 기사는 6정 군단의 주둔지와 주치(州治)의 이동 사실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한다.
이에 의거하건대, 하주의 주치와 정군단의 주둔지는 비자벌(비사벌)에서 대야(지금의 경남 합천)로, 대야에서 압량(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으로, 그리고 663년(문무왕 3)에 압량에서 거열로 옮겼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삼국사기』에 나오는 하주정은 하주에 위치하였던 비자벌정, 대야정, 압량정, 거열정을 포괄하여 지칭하는 표현으로 간주할 수 있다.
665년 이후부터 옛 하주 지역을 거열주라 불렀으나, 663년 이래 정의 이름은 계속 거열정이라 칭하였다. 결국 『삼국사기』의 기록은 685년에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에 위치한 거열정을 옛 백제 지역인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로 옮기고, 그것을 완산정이라 부른 사실을 반영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완산정에는 장군 3명을 두었고, 예하에 군관으로 대관대감 4명, 대대감 2명, 제감 4명, 감사지 1명, 소감 17명, 화척 14명, 군사당주 1명, 대장척당주 1명, 보기당주 4명, 흑의장창말보당주 20명, 군사감 2명, 대장척감 1명, 보기감 4명을 배치하였다. 완산정의 깃발 색깔은 백자(白紫)였다. 완산정은 경덕왕 대 이후에 해체하였다고 보기도 하나 확실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