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사 ()

광주 원효사
광주 원효사
불교
유적
광주광역시 북구 무등산(無等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제22대 지증왕이나 제23대 법흥왕 당시 창건된 사찰.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무등산(無等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제22대 지증왕이나 제23대 법흥왕 당시 창건된 사찰.
개설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이다.

역사적 변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의 지증왕이나 법흥왕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뒤 삼국통일을 전후한 문무왕원효(元曉)가 이곳에 머물면서 암자를 개축한 뒤부터 원효사 · 원효당 · 원효암 등의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 일설에는 고려 충숙왕 당시의 이름 있는 화엄종승(華嚴宗僧)이 창건한 뒤 원효를 사모하는 마음에서 원효암이라 했다고도 한다.

그 후의 역사는 입증할 길이 없으나 문정왕후(文定王后)주1 때 사세(寺勢)가 다시 일어났으며, 선조 때의 승병장이었던 영규(靈圭)가 수도했던 곳이기도 하다. 정유재란 때 전소된 뒤 증심사(證心寺)를 중창했던 석경(釋經)이 직접 기와를 구워 중창하였다.

그 뒤 1636년(인조 14)에 신원(信元)이, 1685년(숙종 11)에는 신옥(信玉)과 정식(淨式)이, 1789년(정조 13)에는 회운(會雲)이, 1831년(순조 31)과 1847년(헌종 13)에는 내원(乃圓)이 각각 중수하였다.

내용

6·25전쟁으로 소실된 것을 광주광역시 당국의 무등산 개발에 힘입어 1954년부터 중창에 착수하였다. 이 때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대웅전, 선원(禪院)주2 등을 중건하였다.

이 공사 때 옛 절터에서 삼국시대의 금동불상 6점을 비롯하여 백제의 토기와 와당, 통일신라시대의 금동불상 6점, 고려시대의 철불두상(鐵佛頭像) · 고려자기 및 기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만든 토기불두(土器佛頭) 140점이 출토되었다. 이들 출토 유물 중 32점은 일괄하여 1987년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또한, 절 주변에는 무명의 고려시대 묘탑을 비롯하여 조선 중기의 회운당부도(會雲堂浮屠) 등이 산재되어 있다. 부도는 높이 2m이고 4각 지대석(地臺石) 위의 4우(隅)에 신장(神將)을 세운 중대석을 놓고 그 위에 연화대로 받쳐진 탑신을 얹고 있는데, 옥개는 역시 8각으로 각 마루에는 용 · 거북 · 비둘기 등의 동물들이 조각되어 있다. 이 부도는 1986년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지정명칭은 원효사 동부도이다.

이외 원효사 선원에는 1989년 광주광역시 시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원효사소장만수사범종이 있다.

이 절에서 무등산의 정상 쪽으로 골짜기를 넘은 곳에 의상대(義湘臺)라는 매우 수려한 바위 봉우리가 있으며, 그 아래에는 의상토굴이 있다.

참고문헌

『명산고찰 따라』(이고운·박설산, 신문출판사, 1987)
『문화유적총람』(문화재관리국, 1977)
주석
주1

군주가 직접 통치할 수 없을 때에 군주를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림. 또는 그런 사람. 우리말샘

주2

학교나 공공 단체의 기숙사. 우리말샘

주3

건축물을 세우기 위하여 잡은 터에 쌓은 돌. 우리말샘

집필자
장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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