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용빈(用賓), 호는 양파(陽坡). 안동 출신. 유숙(柳橚)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진휘(柳振輝)이다. 아버지는 유봉시(柳奉時)이며, 어머니는 통덕랑 신이징(申以徵)의 딸이다. 형 유승현(柳升鉉)에게 수학하였다.
1735년(영조 1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헌부감찰이 되었다. 형 유승현이 외직으로 나갔다가 죽자, 벼슬을 버리고 하향하였다. 1753년 경성판관에 등용되어 사간·필선 등을 역임하고 벼슬에서 물러났다. 뒤에 장령과 형조참의 등이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경성판관으로 있을 때 초하루와 보름의 점고에 빠진 남정(男丁)들로부터 받는 세금과 무세(巫稅)로 바치는 포(布)를 감면해주는 등 많은 치적을 남겼으며, 흉년에 1,000여석의 양곡으로 기민(飢民)을 구제하였다.
또,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시강관(侍講官)으로 있을 때, 「역도촬요(易圖撮要)」를 만들어 세자에게 『주역』을 가르쳤다. 저서로는 『양파집』 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