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맨 위에 전서체로 제목 “남지기로회도(南池耆老會圖)”를 쓰고, 그 밑에 모임 장면을 도화서 화원이었던 이기룡(李起龍)이 그렸다. 그 아래로 장유(張維)의 기문(記文), 좌우에 길게 쓴 이경직(李景稷)의 서문이 있으며, 서문 아래에는 참석자들의 관직, 성명, 자(字), 호(號), 생년월일, 본관과 함께 참석한 자제들의 관직, 성명 등을 이경석(李景奭)이 기록한 좌목(座目)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림 부분의 오른편 아래에는 “이기룡사(李起龍寫)”라는 관서(款署)가 적혀 있다.
1629년 음력 6월 5일 잠깐 비가 갠 사이에 숭례문 밖 홍사효(洪思斅)의 집에 노인 열두 명이 함께 모여 활짝 핀 연꽃을 감상한 후, 이 일을 기념하여 그림으로 그려서 참석자들이 하나씩 나누어 가졌다. 기로회의 참석자들은 나이 순에 따라 이인기(李麟奇), 윤동로(尹東老), 이유간(李惟侃), 이호민(李好閔), 이권(李勸), 홍사효, 강인(姜絪), 이귀(李貴), 서성(徐渻), 강담(姜紞), 유순익(柳舜翼), 심론(沈惀) 등 12명이다. 심론을 제외하고는 모두 71세부터 81세까지의 기로들이었다. 당시 68세였던 심론은 중국 송대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에 사마광(司馬光)이 64세로 참가했던 고사를 따라 특별히 참석하였다. 이유간의 아들 이경직이 작품의 제작을 주도했고 좌목을 쓴 이경석은 이경직의 동생이다.
건물 안쪽에는 갓을 쓴 노인들이 바닥에 깔아놓은 자리에 앉아 술과 음식을 대접받고 있다. 날씨가 더운 탓인지 부채를 든 사람도 보인다. 건물 아래로 연꽃이 가득 핀 네모난 연못이 있고 좌우로 버드나무 한 쌍이 시원하게 서 있다. 밑에는 성루와 성곽이 살짝만 보인다. 안개와 구름이 마치 연회가 열리는 건물의 지붕에서부터 아래로 흘러나와 전체 장면을 둥그렇게 감싸고 있어 상서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기로회도는 17세기 계회도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즉 인물을 아주 작게 표현하던 이전의 계회도와는 달리 모임 장면이 크게 부각되고, 산수 배경의 비중은 많이 줄어들었다.
이 그림을 그린 이기룡은 화원 가문 출신의 도화서 화원으로 각종 궁중화사에 참여하면서 활약했다. 1643년에는 통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을 다녀왔으며 그곳에 작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이 작품과 관련이 있는 남지기로회도가 현재 동아대학교박물관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 남아 있는데 일부는 후대에 다시 그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