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순정(柳順汀, 1459~1512)은 문과에 장원급제를 하였고 여러 관직을 거쳐 연산군대에 이조판서에 올랐다. 하지만 연산군을 권좌에서 몰아내고 중종을 세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여 1506년(중종 1) 정국공신(靖國功臣)이 되었고, 그 후 이과(李顆)의 옥사를 다스린 공으로 정난공신(靖難功臣)이 되었다.
그림 위에는 정국공신으로 영의정에 올랐던 유순정의 초상이라고 제목이 적혀 있다. 왼쪽 위에는 김상헌(金尙憲, 15701657)의 찬시가 적혀있다. 그 밑에는 1720년(숙종 46)에 후손 유수(柳綬, 16781756)가 쓴 글이 있어 김상헌의 시를 자신이 다시 적었음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원본을 기초로 하여 18세기 경에 모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초상화를 넣어 보관했던 함이 함께 전하고 있다.
그림 속의 유순정은 두 손을 맞잡아 소매 속에 넣고 의자에 단정하게 앉아 있다. 오른편으로 살짝 돌린 얼굴은 사십대 중반 중년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데 양볼과 콧등에는 천연두를 앓아 생긴 흉터까지 그렸다. 양 옆으로 긴 날개가 달린 오사모를 쓰고 있으며, 짙은 푸른색의 단령(團領)을 입고 있다. 가슴에는 금물감으로 공작새 한 쌍이 있는 흉배를 그렸으며, 서대 허리띠가 보인다. 구름 무늬가 자세히 그려진 단령은 오른편 아래 트인 사이로 안에 받쳐 입은 붉은 색의 답호와 초록색의 철릭이 겹겹이 보인다. 그 사이로 튀어나온 노란색 주머니는 병부(兵符)를 넣는 것이다.
바닥에 깔린 울긋불긋한 카펫은 페르시아 계통의 복잡한 무늬가 특이한데 카펫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작은 점으로만 치밀하게 그렸다. 유순정이 앉아 있는 교의(交椅)는 위쪽 등받이와 팔걸이 부분은 둥글게 휘어져 있다. 오른편에 보이는 자주색 끈은 방석을 묶은 것이다. 검은 가죽신을 신을 두 발은 나무로 만든 발받침을 딛고 있는데 윗면은 화문석을 자세하게 그렸다. 2009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현재 임진왜란 이전에 그려진 초상화는 남아 전하는 수량이 적다. 따라서 이 작품은 후대의 모사본이지만 16세기의 초상화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즉, 조선 초기에서 중기 초상화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도상적 특징과 화면 구성 등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현재 서울역사박물관에도 거의 동일한 유순정 초상화가 있는데 제목과 시는 적혀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