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1998. 서울 태생.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6년 서울대학교 인문대 미학과에 재학중 미국으로 건너가 1960년 오하이오주 마이애미대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고교 재학시절부터 연극활동을 한 그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미학과에 진학해서도 연극을 계속 하였으며 미국 유학시절에도 연극에 대한 집념은 변함없이 이어졌다. 귀국한 후 1962년 드라마 센터의 개관 공연에 참여하고 같은해 극단 실험극장에 입단하였다.
1963년 극단 산하의 창립에 관여하였으나 곧 실험극장 단원으로 복귀하였고, 이를 전후하여 「로미오와 줄리엣」(1962)·「안티고네」(1963)·「순교자」·「리어왕」(1964)·「안도라」(1965)·「증언」(1966)·「화니」(1967)·「막난이」·「맥베스」(1969)·「우리 읍내」(1970)·「소」·「여름과 연기. 그리고 바람」·「햄릿」(1971)·「오셀로」·「맹진사댁 경사」(1972)·「티타임의 정사」(1974) 등 창작·번역극에 꾸준히 출연하였다.
1964년엔 「리어왕」으로 제1회 동아연극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영화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65년 김기덕 감독의 「용사는 살아있다」부터이다. 부상을 입고 인민군에게 포로가 되어 야전병원에 수용된 연대장을 구출하기 위해 적진에 투입되는 국군 일개분대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출연하였다.
여세를 몰아 고기잡이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실종된 남편을 기다리다 개가한 형수를 연민의 정으로 바라보는 시동생 성칠역을 맡아 관심을 끈 「갯마을」(1965)을 비롯하여 「태양은 다시 뜬다」·「계룡산」(1966)·「강명화」·「가고파」·「섬마을 선생」·「안개 낀 초원」(1967)·「꽃내」·「주차장」·「지하 여자대학」(1969)·「두 여보」(1970)·「동과 서」(1971)·「설야」(1974)·「강력계」(1976)·「그 여자에게 옷을 입혀라」(1978)·「나팔수」·「난중일기」(1979) 등에서 주조연으로 활약했다.
그의 연기는 「갯마을」·「태양은 다시 뜬다」·「두 여보」 등에 나타나고 있듯이 서민풍의 소탈함과 쇠로 긁는 듯한 광물성 억양이 특징이다. 라디오 연기(성우)로 시작하여 연극, TV드라마 그리고 영화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른 매체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그 특성에 가장 잘 어울리는 연기를 개발하였다. 1963년부터 활동한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1세대 TV 연기자다운 비중을 인정받아 1979년 텔레비전 연기자협회 회장에 선출되었고, 집권당인 민정당 추천 제11대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진출하기도 했다. 제1회 동아연극상 주연상 수상, 한국연극영화 최우수 연기상, TV부문 수상, TBC연기대상 주연상 수상, KBS연기대상을 수상했다.
1983년 유네스코 한국위원을 거쳐 1989년엔 영화사 현대훨코를 설립, 「밀월」(변장호 감독) 등을 제작하였다. 그는 더빙용 외화 번역에도 손댈 만큼 영어 실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