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실(李芳實, 1298~1362)은 고려 후기 2차에 걸친 홍건적의 침입을 격퇴하는 데 큰 공을 세워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에 올랐다. 그러나 안우(安祐), 김득배(金得培)와 함께 이른바 ‘삼원수(三元帥) 살해 사건’으로 죽임을 당하였다.
1391년(공양양 3)에 복권되어 충렬(忠烈)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함안(咸安)에서 출생한 이방실이 사후 가평에 매장된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은데, 묘소가 자리한 가평읍은 함안이씨(咸安李氏)의 세거지(世居地) 가운데 하나이다.
이방실장군묘는 가평 수리봉(544.5m)의 동남쪽 지맥에 있다. 묘역은 능골로 불리는 골짜기 사이로 북서-남동 방향으로 뻗어내린 가지 능선의 정상부에 자리하며, 정면으로 북한강이 바라다보인다.
봉분은 평면 원형으로 하단에는 현대에 설치된 병풍석이 설치되어 있다. 봉분 주위에 사성(莎城)이 둘러져 있다. 봉분 정면 좌측에는 묘비(1978년 건립)가, 우측에는 기념비(1984년 건립)가 세워져 있다. 묘비에는 진양강씨(晉陽姜氏)와 영산신씨(靈山辛氏)가 합장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봉분 전면 계체석 아래에 상석과 향로석이 놓여 있고, 무인석과 망주석 각 한 쌍이 좌우에 배치되어 있다. 묘역의 형태는 후대에 변형되었고 석물도 모두 현대에 제작된 것으로 조성 당시 묘제의 특징은 남아 있지 않다. 묘 아래쪽으로 이방실의 후손 이예와 이집의 묘가 자리한다. 묘역 아래에는 현대에 건립된 신도비와 사당인 충렬사(忠烈祠)가 조성되어 있다.
이방실장군묘는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하색리 산81번지에 있다. 1972년 7월 10일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970~1980년대 후손들이 묘역을 정화하고 석물을 제작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1986년 충렬사를 건립하고 1994년 신도비를 세웠다. 매년 음력 10월 3일 함안이씨 종중에서 시향(時享)을 지낸다.
묘역은 후대에 정비되어 본래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으나, 홍건적의 침입을 격퇴하여 국난을 극복하는 데 큰 공로를 세운 고려 후기 무신 이방실의 생애와 업적, 그리고 고려 후기의 시대상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