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하빈(河濱). 자는 수경(繡卿), 호는 연사(蓮士). 진사 이병형(李秉衡)의 아들이다. 학문이 조숙하여 8세 때부터 이미 시를 지었으며, 당시 이름난 문사들과 교유하며 문명을 떨쳤다.
신위(申緯)로부터 300년에 하나 날만한 인물이라는 평을 받았다. 또한 정약용(丁若鏞)으로부터는 불세출의 천재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1846년(헌종 12) 진사시에는 합격하였으나 과거에는 번번이 낙방하였다. 한때 향헌(鄕憲)이 되었으나 이조헌의 바른 성품이 화근이 되어 함종으로 유배된 일이 있었다. 그 뒤 사신을 수행하여 청나라에 갔다온 일이 있다.
이조헌은 실학사상에 입각하여 사농공상(士農工商) 중에서 농공상을 중히 여기는 근대적인 직업관을 역설하고, 선비가 하는 일 없이 무위도식함을 비판하였다. 이조헌의 글씨는 당세에 이름을 크게 떨쳤으며, 옹방강(翁方綱)·소동파(蘇東坡)의 필법에 연원을 둔다. 이조헌의 글씨는 명가의 비갈(碑碣)에 주로 많이 쓰였다. 저서로는 『연사유고(蓮士遺稿)』 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