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향교 대성전 ( )

장수향교 대성전 정면
장수향교 대성전 정면
건축
유적
국가유산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장수읍 장수향교 경내에 있는 조선전기 공자와 선유의 위패를 모신 문묘. 유교건축.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장수향교 대성전(長水鄕校 大成殿)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향교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1963년 01월 21일 지정)
소재지
전북 장수군 장수읍 향교길 31-14 (장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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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장수향교 대성전은 전북특별자치도 장수읍 장수향교 경내에 있는 조선 전기 공자와 선유의 위패를 모신 문묘이다. 장수향교는 1407년에 장수읍 선창리 당곡마을에 처음 창건되었다. 보통 평지에 세워진 향교는 앞쪽에 대성전이 있고 뒤에 명륜당이 자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장수향교는 뒤쪽에 대성전이 있다. 장수향교 대성전은 조선 시대 향교 건축의 대표 건물 중 하나이다. 숙종 연간에 이건되었지만 2차례 왜란 때도 소실되지 않아 희소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대성전의 지붕부를 받치는 부재 및 건축 수법은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키워드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장수읍 장수향교 경내에 있는 조선전기 공자와 선유의 위패를 모신 문묘. 유교건축.
개설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장수향교 대성전은 공자와 4성(四聖 : 안자, 증자, 자사, 맹자)을 비롯하여 공문 10철(孔門十哲 : 공자의 문인 중 학덕이 뛰어난 10명의 제자)과 송조 6현(宋朝六賢 : 송나라의 유명한 6명의 유학자),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함께 봉안하고 있다. 매년 봄과 가을에 이들을 기리는 석전제(釋奠祭)를 지낸다.

역사적 변천

장수향교는 1407년( 태종 7)에 지금의 장수읍 선창리 당곡마을에 창건되었다. 2차례의 왜란으로 인해 전국에 있던 향교는 거의 다 소실되었지만 장수향교는 다행히 무사하였다. 그 이유는 정경손(丁敬孫)이 향교에 불을 지르려 하는 왜적들을 막자 적장이 그의 의기에 감복하여 출입을 금지하는 신표(信標)를 써 주었기 때문이다. 이후 장수향교는 전국적으로 향교를 재건할 때 표본이 되기도 했다.

1681년( 숙종 7)에는 장수향교 터가 가라앉고 비가 새자 유림들이 조정에 이건을 건의하였다. 그 결과 1685년(숙종 11) 3월부터 현 위치에 대성전(大成殿)을 비롯한 명륜당(明倫堂), 동 · 서재(東西齋) 등의 이건공사를 착수하여 이듬 해 2월에 완료하였다. 1877년( 고종 14)과 1935년에 각각 중수하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하였다.

내용

장수향교는 평지에 자리하고 있다. 명륜당과 동 · 서 양재(兩齋)로 이루어진 강학(講學) 영역은 앞에 있고, 그 뒤에는 문묘(文廟) 영역이 자리하여 전체적으로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구성을 하고 있다. 홍살문을 들어서면 우측에 고직사와 새로 신축한 충효당이 있고, 외삼문인 부강문(扶綱門) 앞쪽에는 충복(忠僕) 정경손의 비각이 있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명륜당이 남서향하여 자리하고 있다. 명륜당 뒤쪽에는 경성재(敬誠齋)와 진덕재(進德齋)가 자리하여 소위 ‘전당후재(前堂後齋)’형의 강학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내삼문 서쪽에는 사마재(司馬齋)가 있으며 내삼문을 들어서면 대성전이 자리하고 있다.

특징

평지에 세워진 향교는 서울 성균관, 전주향교, 나주향교, 경주향교에서 볼 수 있듯이 앞에 대성전이 있고 뒤에 명륜당이 자리하는 전묘후학(前廟後學)의 배치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장수향교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형식을 취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본래 경사지에 있던 건물을 평지로 이건하면서 본래의 배치 형식을 따랐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또한 장수향교는 일반적인 향교와는 달리 문묘영역에 동무(東廡)와 서무(西廡)를 건립하지 않은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전사적비(長水鄕校移轉事蹟碑)」(1691년)에도 동무와 서무를 옮겼다는 기록이 없어 처음부터 동 · 서 양무(兩廡)는 건립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의 단층 맞배집으로 낮은 장대석 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앞 퇴는 개방하고 전면 고주열에 맞춰 문을 달았으며 내부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다. 정면 가운데 칸 두 짝 띠살문을 달았고 협칸에는 외짝문과 띠살창을 달았다. 외관에서 보이는 특징은 귀기둥 옆에 달려 있는 구부러진 부재이다. 이 부재는 다른 건물에서는 보기 어려운 특수한 부재이다. 맞배지붕의 양쪽 끝 부분이 처지는 것을 구조적으로 보강하면서 지붕부와 축부(軸部)를 시각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해 주고 있다. 초석은 자연석을 사용하였으며 그 위에 원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정면과 배면의 구조가 서로 다르다. 정면 공포는 기둥 상부에만 포를 짜 올린 2출목(出目) 3익공 형식으로 주심포와 다포의 수법이 혼합되어 있다. 초제공과 2제공은 연꽃을 조각하였고 끝 부분이 위쪽으로 뻗어 올라가는 앙서형(仰舌形)이다. 3제공은 연봉오리를 조각하였으며 끝 부분이 아래쪽을 향하는 수서형(垂舌形)이다. 그러나 배면의 공포는 1출목 2익공 형식으로 정면보다 간략하게 처리하였다.

가구구조(架構構造)는 1고주(高柱) 7량(梁) 구조로서 대들보와 중보, 종보를 사용한 3중량(重樑) 형식이다.

의의와 평가

장수향교는 조선 전기 향교의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이곳에서 보관하던 서적은 지방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특히 대성전은 조선시대 향교 건축의 대표 건물 중 하나로서 비록 숙종연간에 이건되었지만 왜란 때도 소실되지 않은 희소성을 지니고 있다. 지붕부를 받치는 구부러진 부재는 다른 건축물에서는 보기 어려우며 주심포와 다포의 수법이 혼용된 공포 등은 건축사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의 건축문화재 전북편』(홍승재, 기문당, 2005)
「장수향교 대성전 실측조사보고서」(문화재청, 2001)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홍승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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