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251m의 선상지대(扇狀地帶)에 위치하며, 1959년 서울대학교의 김철준(金哲埈)에 의하여 용담동 고인돌과 함께 발견되었다.
이것은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여타 북방식(北方式)·남방식(南方式)의 고인돌 형식과는 달리 뚜껑돌[蓋石] 밑에 수매의 판석(板石)을 병풍모양으로 둘러 타원형·말각방형·장방형의 돌방[石室]을 만든 것으로, 개석식(蓋石式)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연대는 고인돌의 편년상 최말기에 속한다고 본다. 뚜껑돌 또는 지석(支石)으로 사용된 석재는 제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무암(玄武岩)이나 용암(溶岩: 라바)이다.
여기서 발견된 유물들은 민무늬토기[無文土器]·돌도끼[石斧] 등이 대표적인데, 특히 제4호 고인돌에서는 신라토기편이 발견된 바 있다. 그러나 여타 고인돌에서 흔히 발견되는 돌검[石劍]·돌화살촉[石鏃]·청동기(靑銅器)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연대는 발견 당시 일본의 야요이[彌生] 중기(서기전 100∼서기 100)로 추정되었는데, 한국고고학 편년상으로는 청동기시대 후기 또는 초기 철기시대(서기전 300∼0)에 해당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