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경휴(景休), 호는 구애(龜厓). 아버지는 조경섭(曺暻燮)이며, 어머니는 달성서씨(達城徐氏)로 서덕순(徐德淳)의 딸이다. 유치명(柳致明)의 문인이다.
1831년(순종 31) 식년문과에 급제, 승문원부정자가 되었고, 1840년 예조좌랑·종부시주부·사헌부감찰을 역임하였다. 1845년 성균관전적, 1849년 사간원정언으로 문신선전관(文臣宣傳官)을 겸직하였다.
철종이 등극한 뒤에도 언관으로서 신임을 받았으나, 곧 고향에 은거하였다. 1867년 조정에서 고을마다 강석(講席)을 열어 위정척사를 부르짖도록 하자, 사서삼경의 강석을 열어 유풍(儒風)을 진작시켰고, 1875년 공조참의에 제수되었다. 저서로는 『구애집』 3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