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자실(子實), 호는 용헌(慵軒). 조우(趙玗)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계팽(趙季砰)이고, 아버지는 조지부(趙之孚)이며, 어머니는 조휘(曹彙)의 딸이다.
1513년(중종 8) 생원시에 합격하여 내수사별좌(內需司別坐)가 되었다. 그 뒤 1521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사성·안동부사 등 내외직을 역임하였다. 학문이 널리 알려져 1535년 3월 조사수(趙士秀) 등과 함께 사유록(師儒錄)에 올랐다.
같은 해 8월 사성에서 충주목사로 교체되었는데, 아무나 사유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여 재차 사성에 임명되어 후진양성에 힘을 기울였다.